김정은 방북 요청 사실상 수락 배경·의미 / ‘분쟁지역 해결’ 사도 의무 이행 결단 / 당초 ‘긍정적 검토’ 모범답안 예상 깨 / 지지부진한 북·미협상 변곡점 전망 / 비판 시달리던 트럼프에 힘 실어줄 듯 / 김정은, 조만간 방북 초청장 보낼 듯 / 北 정상국가화 의지 재표명 기회로프란치스코 교황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방북 초청을 사실상 수락함에 따라 북·미 비핵화 협상 촉진을 위한 문재인 대통령의 ‘중재외교’에 새로운 추동력이 확보됐다는 평가다.

문 대통령을 메신저로 한 김 위원장의 평양 방문 초청을 교황이 받아들일 것이라고는 누구도 쉽게 예상치 못했다.

아무리 프란치스코 교황이 한반도 문제에 관심이 많고 평화 논의를 강력히 지지한다 하더라도 교황청 미수교국이자 독재국가로 악명 높은 북한을 방문하려면 논의되어야 할 문제가 한두 개가 아니기 때문이다.

‘북한이 정식으로 초청하면 긍정적으로 검토해줄 수 있다’ 정도가 교황청이 내놓을 모범답안으로 거론됐었다.

그러나 18일 문 대통령을 만난 프란치스코 교황은 초청장이 오면 가겠다는 뜻을 밝혔다.

한반도 평화를 위해 까다로운 형식과 절차를 모두 생략하고 "북한의 부름에 응답하겠다"는 뜻을 밝힌 것이다.

이는 항상 소탈함으로 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교황이 ‘분쟁지역을 방문해 평화를 기원하고 화해를 주선한다’는 사도의 의무를 이행하기 위해 내린 결단으로 받아들여진다.

세계 최대 규모의 단일 종교 지도자이자 서구 여론에 큰 영향력을 지닌 프란치스코 교황 방북은 ‘비핵화의 대가’라는 까다로운 난제에 발목 잡힌 비핵화 협상에 새로운 변곡점이 될 전망이다.

무엇보다 북한과 비핵화 협상을 이끌면서도 미국 조야의 비판과 반대에 시달리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북은 큰 힘이 될 전망이다.

"강력한 제재와 과감한 담판으로 북한을 정상국가로 이끌어가고 있다"며 자신의 대북 외교 정책이 옳았다는 점을 내세울 수 있어서다.

교황 방북을 계기로 달라진 북한에 대한 인식이 널리 퍼지고 한반도 평화와 안정을 염원하는 교황의 뜻이 전 세계에 전해지면 한반도 평화체제 정착 구상에 대한 지지 기반이 확산하면서 비핵화를 앞당겨야 한다는 여론도 미국 내에서 다시 조성될 수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순방국에 도착해 땅을 밟자 마자 흙에 입맞춤하는 ‘친구(親口)’를 ‘동토의 땅’ 북한에서도 한다면 김 위원장에게도 큰 의미를 지닌다.

핵무기 폐기 방침을 밝힌 김 위원장이 국제사회로부터 ‘정상국가’ 인정을 받는 이정표가 될 수 있다.

평화체제를 받아들이고 정상국가로서 국제사회에 다가가겠다는 북한의 의지를 전 세계에 알리는 기회가 될 수 있어서다.

북한이 조만간 교황에게 방북 초청장을 보낼 것이란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교황 방북 초청 수락으로 문 대통령도 성베드로 성당 기념연설에 이어 큰 성과를 거뒀다.

북한에 대한 불신을 거두지 못하는 국제사회를 설득하고 대북 제재 완화를 공론화하기 위한 노력이 상당한 결실을 얻었기 때문이다.

특히 문 대통령은 교황청 방문 첫날인 지난 17일 12억 가톨릭 인구의 영적 중심지 성베드로 대성당에서 이뤄진 한반도 평화 기원 미사와 문 대통령의 기념연설에서도 극적인 무대를 만들었다.

오로지 선택된 가톨릭 고위 사제만이 오를 수 있었던 성베드로 대성당 내에서도 ‘성베드로의 성좌’ 앞에 선 문 대통령은 "한반도와 전 세계의, 평화의 미래를 보장하는 바람직한 길을 개척 중"이라며 "우리는 기필코 평화를 이루고 분단을 극복해낼 것"이라고 다짐했다.

교황청은 이 같은 외국 정상 연설을 "매우 특별하고 이례적인 일(unique and exceptional)"이라고 설명했다.

이날 미사에 참석한 한인 수녀도 " 교황청에서 9년째 있는데 단 한번도 외국 정상이 와서 연설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전례없는 장엄한 무대는 사실상 교황청이 문 대통령의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지지하는 뜻으로 준 선물이었다.

바티칸시티=박성준 기자 alex@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