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손예진(36)은 2001년 드라마 '맛있는 청혼'으로 데뷔했다.

MBC 창사41주년 특집드라마로 갓 신인이 미니시리즈 데뷔작 여주인공을 맡은 첫 작품이었다.

당시 방송계에서는 신인에게 '여주'를 주지 않았다.

그래서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 작품은 손예진에게 뗄 수 없는 상징성을 갖고 있다.

영화로는 '연애소설'(2002) '내 머리 속의 지우개'(2004)를 거쳐 2005년 '외출'로 호평을 받으며 배우로서의 존재감을 드러낸다.

'외출'에서는 20대 중반 주부의 불륜 감정을 깊이 있고 잔잔하게 그려냈다.

이 영화로 그해 제50회 아시아태평양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한다.

필자와의 인연은 그로부터 3년 뒤인 2008년, 손예진이 영화 '아내가 결혼했다'로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을 받으면서다.

김주혁과 열연한 이 작품에서 귀여운 외모와 넘치는 애교 등 '손예진 캐릭터'를 확실히 각인시키며 여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다.

당시 주최사 대중문화부장 겸 심사위원으로 참여한 필자는 그의 유쾌한 연기에 매료돼 불문곡직 한 표(투표결과는 시상식 직후 언론에 공개됨)를 던졌다.

이후 그가 스크린 스타로 써내려간 필모그래피는 필자가 새삼 설명할 필요도 없을 만큼 탄탄대로다.

데뷔 후 꾸준히 굴곡 없는 작품활동을 해오며 많은 후배 여배우들의 롤 모델로 언급되기도 한다.

원동력은 역시 연기력이다.

심지어 사소한 잡음이나 논란, 그 흔한 스캔들 한 번 없었다는 사실이 이를 뒷받침한다.

2018년은 배우 손예진의 해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드라마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와 영화 '지금 만나러 갑니다' '협상' 등 스크린과 안방극장을 넘나들며 종횡무진했다.

특히 영화 '협상'은 추석연휴 직후 잠깐이지만 뒤늦게 역주행하는 호응도 얻었다.

뉴스의 중심에 선 그와의 단독 대면 인터뷰가 쉽지 않았지만, '의리의 여신' 답게 아주 오랜만의 만남요청에 기꺼이 응했다.

손예진스러운 자신감의 발로다.

긍정 이미지의 손예진과의 스페셜인터뷰는 지난 18일 서울 강남구 신사동의 U 카페에서 1시간 동안 진행됐다.

-올해도 '손예진'이라는 배우는 펄펄 날았다.

드라마와 영화 모두 주목을 받았는데 스스로 평가한다면? 결과가 좋아 정말 다행이죠. 드라마든 영화든 뚜껑을 열기 전까지 늘 긴장의 연속이잖아요. 영화는 두 편 모두 지난해 촬영을 마친 작품인데 올해 겹쳐 개봉되는 바람에 덩달아 바쁜 한 해가 됐어요. '협상'은 호평에도 불구하고 관객수에서 조금 아쉽긴 해요. 손예진은 올 3월 소지섭과 호흡한 '지금 만나러 갑니다'로 황무지나 다름없던 충무로 로맨스 멜로에 불을 지폈다.

260만 관객이 들었다.

JTBC 드라마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는 '연애시대' 이후 오랜만에 '손예진표' 섬세한 연기가 빛을 발했다.

현빈 김상호 등과 호흡한 범죄오락 영화 '협상'에서 역시 경찰 하채윤 역을 거침없이 연기해 배우로서의 입지는 물론 작품성까지 인정받았다.

-데뷔 19년째다.

다양한 장르를 폭넓게 연기하며 굴곡없는 연기자의 길을 걷고 있다.

아쉬운 대목은 없나? 왜 아쉬움이 없겠어요. 다만 그렇게 비친다면 제게 보여주시는 팬분들의 과분한 사랑과 관심 덕분이죠. 제가 보기완 달라요. 주변에서는 털털하고 대범하다고들 해주시는데 늘 긴장의 연속이에요. 작품활동을 하는 동안만은 제 스스로 끈을 놓지 않고 항상 엄격한 기준과 잣대를 지키려고 노력하거든요. 그걸 유지하는 게 매번 힘든 고통이죠. 아마 다시 태어난다면 배우 되는 건 포기할 것같아요.-데뷔 이후 공백이 거의 없었다.

꾸준한 작품활동을 한다는 게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운 좋게 첫 단추를 잘 뀄다고 믿어요. 데뷔작부터 주인공을 맡는다는 게 얼마나 대단한 건지 연기경험을 쌓으면서 차츰 알게 됐죠. 연기는 할수록 어렵다는 말은 그만큼 영역이 좁아진다는 의미 아닐까요. 철모르던 시절엔 단지 의욕과 열정만으로 어떤 무게감이라도 견뎌낼 용기가 생겼을 것같아요. 손예진은 데뷔 드라마 '맛있는 청혼'(2001년) 이후 '연애시대'를 통해 여성시청자들에게도 거부감이 없는 이미지를 심었다.

영화 '내 머리 속의 지우개'나 '클래식' 등의 멜로를 거쳐 '작업의 정석' '첫사랑' '오싹한 연애'로 로코 상징이 됐고, '비밀은 없다' '무방비' '공범' 등 스릴러까지 스펙트럼을 넓혔다.

-소속사와 의리는 익히 소문이 나 있다.

연예계 속성으로 보면 20년 가까이 한솥밥을 먹으며 동고동락한다는 게 좀처럼 드물지 않나? 글쎄요, 전 의리나 뭐 이런거 생각없이 그냥 편한 분들과 오래 함께 하는 게 좋다는 주의예요. 김민숙 대표님이 여고 3학년때 저를 발탁했고, 연예계에 입문시킨 분이니 한 가족인 셈이잖아요. 유불리를 따져 좀더 좋은 조건을 찾아 떠나면, 힘들어지고 상황이 바뀌었을 땐 그 반대의 처지가 되지 않을까요. 손예진은 미용실마저도 데뷔한 이래 19년째 같은 곳(청담동 제니하우스)을 이용한다.

이에 대해 소속사 엠에스팀엔터테인먼트 김민숙 대표는 "연예계에서 보기 드문 진중하고 듬직한 배우"라고 표현했다.

그는 "(손)예진이라고 해서 타 소속사로부터 유혹을 한 번도 안 받아봤겠느냐"며 "이해타산보다는 초심을 잃지 않으려는 모습을 보며 인간적 공감대를 진하게 느낀다"고 말했다.

손예진은 19년 동안 단 한번도 스케줄을 펑크 내거나 시간을 어겨본 적이 없다고 한다.

-데뷔 직전 당시 여고 3학년 신분으로 서울을 오가며 연기공부를 했다고 들었다.

지금의 김민숙 대표님을 만난 건 99년 대구 정화여고 시절이에요. 아역으로는 좀 늦었고, 성인으로도 애매한 나이였죠. 당시엔 여고생도 아역으로 분류되던 시절이잖아요. 김 대표께서 "차라리 연기공부를 착실히 더 해서 졸업 후 데뷔하자"고 하셨어요. 방학 때마다 대구에서 서울로 열차(새마을호)를 타고 오가며 연기지도를 받았는데 연기한다는 기대감에 지루한 기차여행 조차 즐거웠죠. -영화 '협상'에서 보여준 위기협상팀 경위 하채윤 역할은 기존 로맨스 또는 로코 캐릭터와 좀 달랐다.

현빈과 호흡은 어땠나? 아시는 것처럼 실제 얼굴을 맞대고 찍은 건 마지막 엔딩신 뿐이잖아요. 한달 반 가량 세트 촬영을 함께했지만, 대부분의 장면이 모니터를 보면서 찍는 이원촬영이라 늘 별개의 장소같은 느낌이었죠. 시나리오를 볼 땐 도대체 어떻게 찍을지 걱정스러울 정도였고요. 막상 촬영 때는 생방송 느낌처럼 동시에 진행돼 긴장을 풀 수는 없었죠. 촬영 기간 중 식사는 거의 함께 한 것같아요. '협상'에서 손예진은 어떤 긴박한 상황 속에도 침착하고 냉철하게 사건을 해결해내는 서울지방경찰청 위기협상팀 소속 협상전담 경찰 하채윤 역을, 현빈은 사상 최악의 인질극을 벌이면서도 여유롭게 상황을 관망하는 듯 보이는 경찰청 블랙리스트 국제 범죄 조직의 무기 밀매업자 민태구 역을 연기했다.

-두달 가량 작품을 찍다 보면 서로 비슷하다거나 다른 스타일이 보이지 않나? 상대 배우 현빈과의 교감도 궁금하다.

촬영 때도 느꼈지만, 개봉 일정 잡히고 전국으로 무대인사 다니면서 현빈 씨의 여러 매력을 알게 됐죠. 평소 과묵한 편이지만 유머가 많고, 저 뿐만 아니고 다른 사람 얘기를 잘 들어주는 편이에요. 멋진 상대 배우와 좋은 작품을 유쾌하게 찍은 기억만으로 감사한 마음이죠. 손예진과 현빈은 1982년생 개띠 동갑내기다.

흥행성과 연기력을 골고루 갖춘 30대 동갑내기 배우란 사실만으로 일찌감치 화제였다.

둘은 멜로 '연인 사이'가 아닌 '적'으로 대치하는 관계여서 더 특별한 만남이 됐다.

"동갑내기라도 반말해 볼 기회가 없었다"는 그는 "다른 작품에서는 직접 대면하는 연기를 꼭 해보고 싶다"고 했다.

-경찰 청장의 호출을 받고 특정 장소로 가면서 보여준 정장차림이 꽤 잘 어울렸다.

그동안 작품을 통해서는 제복 입은 모습을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네, 예리하시네요. 나름 다양한 역할을 많이 했다고 믿었는데 지금까지는 작품 안에서 경찰복을 입어본 기억이 없어요. 그러고보니 군복이나 의사 가운도 못입어 봤어요. 제복이 잘 어울렸다면 앞으로 종종 입어도 될 것같네요 ㅋㅋ. 손예진은 20대와는 또다른 '사랑' 이야기를 스크린 속에 지속적으로 그려가고 싶은 소망을 비쳤다.

나이대에 걸맞는 변화를 차근차근 녹여낼 수 있기를 희망했다.

가벼운 코미디 영화의 주인공부터 킬러 같은 강렬한 캐릭터를 넘나들고 싶다고 했다.

그러면서 "아직은 연기 욕심이 너무 많아서"라고 스스로 단정지었다.

-이번 영화 '협상'은 '국제시장' 조감독 출신인 이종석 감독 입봉작(데뷔작)이다.

그러고 보면 유독 신인 감독과 호흡을 맞춘 작품이 많았던 것 같다.

일부러 그런 건 아닌데 여러 요소를 따져 작품을 결정하다 보면 공교롭게 그런 인연이 생기더라고요. '내 머리 속의 지우개' '무방비 도시' '오싹한 연애' '공범' '백야행' '지금 만나러 갑니다' 등이 그렇죠. 이름난 유명 감독이 실패 리스크를 줄이는 안전판인 반면 신인 감독은 열정과 참신성이 앞서잖아요. 요즘엔 감독이 시나리오를 대부분 직접 쓰는 상황이기도 하고요. -영화 얘기도 좋지만, 이쯤 해서 개인 신상 질문을 좀 하려고 한다.

아무래도 미혼이니 결혼 얘기를 빼놓을 수 없다.

결혼 얘기만 물으면 답변이 궁색해요. 늘 꿈꾸는 목표인 것 같은데 신기루처럼 멀어지는 것 같아서 말이죠. 아무 생각 없이 일에 몰입하다 보니 벌써 30대 중반을 넘었네요. 아예 안하기로 했다면 고민할 이유가 없겠지만 저는 독신주의자가 아니거든요. 아직은 절박하지 않아서일까요? 좋은 분 만나면 언제든 콜인데 마흔살 안에는 꼭 해야죠, 헷헷.-논란이나 스캔들에 휘말린 적이 거의 없었고 특히 흔한 열애설에도 비켜간 듯 하다.

비결이 있나? 황당한 소문이긴 했지만 전혀 없었던 건 아니죠. 배우 김남길 씨와 영화 '해적'과 드라마 '상어'에서 연달아 두편을 찍은 뒤 열애설로 이어진 건데 데이트 한 번 해본 적 없는 열애설은 처음부터 말이 안 되는거죠. 진짜 열애설 주인공이 돼 보고 싶네요. 손예진은 2013년 KBS 드라마 '상어'와 영화 '해적:바다로 간 산적'에 출연한 뒤 김남길과 열애설로 번졌다.

양측 소속사 모두 즉각 '오보'라며 반박했다.

당시 손예진 소속사 엠에스팀은 "두 사람은 보도된 기사에 언급된 것처럼 공식적인 촬영 및 행사 일정 외에 개인적인 만남을 가진 적이 없다"고 부인했다.

-이제 본인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어느덧 중견배우가 됐다.

작품 선정이나 작품에 임하는 어떤 기준이 있나? 성격상 일을 앞두면 실수 없이 해내기 위해 스스로 안달복달하는 편이에요. 그리고 기준을 정해놓은 건 아니지만 제 경우 느낌은 확실히 중요한 것같아요. 우선 새로운 배역이면 더 호기심이 발동하죠. 또 하나는 함께 작업하는 동안 배려하려고 노력을 많이 하는 편이에요. 연륜이 쌓이면서 달라진 게 있다면 다소 여유로워졌다고 말할 수도 있겠죠. 좋은 작품으로 꾸준히 평가받을 수 있다면 더 바랄게 없죠.-작품이 없는 시기엔 어떻게 지내나? 홀로 있는 시간이 많을듯 한데 사적 공간 얘기를 살짝 해줄 수 없나. 작품이 결정되면 준비하는 기간부터 촬영까지, 그리고 개봉일이 잡히면 홍보와 무대인사까지 늘 바쁜 나날이 지속되잖아요. 그런데 저는 새로운 작품을 맡기 전 재충전하는 시간이 중요한 것같아요. 마음은 다소 여유롭지만 그렇다고 절대 한가하진 않아요. 손예진은 일주일 중 4~5일은 운동(헬스&필라테스), 마사지 2회, 머리손질 등 미용실 방문, 그 외 책을 보거나 영화관람을 하며 보낸다고 했다.

맛집을 찾아 밥 먹고 술 마시며 수다 떠는 멤버들과의 교감도 소중하다.

공효진 엄지원 송윤아 오윤아 이정현 이민정 손예진, 이른바 '신데렐라7'(여배우 절친 클럽, 밤 12시 이전에 헤어진다는 의미로 작명) 모임이다.

멤버중에서는 이민정 손예진이 막내다.

가끔은 지인이 살고 있는 해외에 머물기도 한다.

-여배우로 살면서 유명세 때문에 불편한 점도 있을 것같다.

마지막으로 아쉬운 점이나 더 채워야 할 게 있다면 얘기해달라. 그 쯤이야 당연히 감수해야죠. 많은 분들한테 받는 사랑을 생각하면 이를 덮고도 남잖아요. 더 채우려고 들면 욕심이고, 저는 현재에 더없이 만족해요. 다만 배우로서 항상 긴장의 끈을 늦추지 않고 살아야한다는 사실이 부담일 뿐이죠. 매번 같은 느낌인듯 다른 이미지의 변신, 뭔가를 기대하게 하는 궁금증을 주는 배우로 계속 보여지고 싶거든요. 이 역시 긍정 마인드로 받아들이면 편해져요. 손예진의 매력은 늘 변함없이 뿜어내는 첫사랑 같은 느낌이다.

데뷔시절 풋풋함에 해를 거듭할수록 완숙미를 더했다.

초심을 유지한다는 게 말처럼 쉽지는 않다.

보통의 30대 여성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은 소탈함으로 안방극장과 스크린을 모두 사로잡았다는 점에서 놀랍다.

명품배우로 거듭난 손예진은 필자와 꼭 10년만의 대면 인터뷰임에도 낯선 느낌보다는 상대를 배려하는 편안함으로 친근감을 더했다.

여전히 환한 미소와 겸손함은 그대로였다.

출연하는 작품마다 호평을 받는 비결은 바로 이런 내면적 깊이에서 뿜어지는 기운이 아닐까 싶었다.

오랜만에 확인한 특급 배우 손예진의 스페셜인터뷰는 시종 유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