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4일 서울 강서구 내발산동 한 PC방에서 발생한 아르바이트생(21) 피살 사건 후폭풍이 거세다.

우리 사회에 잠복돼 있던 ‘민감한 이슈’를 건드렸기 때문이다.

해당 사건은 PC방을 찾은 손님 김모(29)씨가 아르바이트생을 ‘불친절하다’는 이유로 흉기로 31곳이나 무참히 찔러 숨지게 한 것이다.

피해자의 응급치료에 나섰던 이대목동병원 응급의학과 남궁인 전문의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참담한 죽음이었다.인간이 인간에게 그렇게 하기는 어렵다"고 심경을 전하면서 분노는 더 커졌다.

모든 의료진이 욕설을 내뱉었다고 한다.

모델을 꿈꾸던 피해자는 살해당한 다음 날부터 정규직으로 출근할 예정이었다는 사연이 전해져 주위를 더 안타깝게 했다.

경찰의 초동조치가 미흡했다는 논란에 이어 피의자 김씨가 평소 우울증을 앓아왔다며 심신미약 진단서를 경찰에 제출한 사실이 알려지자 여론에 불을 끼얹었다.

사건 발생 사흘 만인 지난 17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강서구 피시방 살인 사건. 또 심신미약 피의자입니다’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청원자는 "언제까지 우울증, 정신질환, 심신미약 이런 단어들로 처벌이 약해져야 합니까"라며 "나쁜 마음먹으면 우울증 약 처방받고 함부로 범죄를 저지를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게시한 지 나흘 만에 추천 동의자가 75만명을 넘어 역대 최대 청원을 기록했다.

사회적 공분을 일으킨 흉악범죄를 저지르고도 심신미약을 내세워 감형을 요구하는 걸 보는 국민들은 법과 현실의 괴리를 느낄 수 밖에 없다.

서울대 곽금주 교수(심리학과)는 "우울증약 처방 받은 것으로 심신미약이면 전국민이 다 심신미약"이라며 "대학생들도 시험기간에 신경안정제도 먹고 수면제도 먹는데 심신미약 주장은 말이 안 된다"고 비판했다.

심신미약은 범죄자들의 ‘단골’ 방패막이처럼 비쳐 매번 공분을 샀다.

2016년 발생한 강남역 살인사건을 저지른 피의자는 조현병 등 심신미약을 이유로 무기징역에서 징역 30년형으로 감형 받았다.

2008년 8살짜리 아동을 성폭행한 ‘나영이 사건’의 범인 조두순(전과 17범)은 만취 상태에서 저지른 범죄라는 이유로 징역 15년에서 12년으로 감형됐다.

이후 분노한 국민들로 주취 감형이 줄긴 했지만 여전히 술을 마신 것이 감형 이유로 작용하고 있다.

인천 초등학생 살해범은 구치소에서 부모가 넣어준 정신질환 관련 책을 읽고 그대로 행동해 정신병 판정을 받은 뒤 심신미약을 이유로 감형을 요청했다.

현행 형법은 ‘심신장애로 사물을 변별하거나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미약한 경우에는 형(刑)을 감경하라’고 돼 있다.

중범죄를 저지른 정신질환자나 심신미약자를 무조건 면책할 수도 없고, 정상인과 똑같이 처벌하기도 어렵다.

옥석을 구분하고, 악용될 소지를 줄여야 한다.

감형은 과학적이고 엄격한 의학적 진단을 통과한 경우로 한정해야 한다.

구속된 김씨는 충남 공주의 국립법무병원 치료감호소에서 곧 정신감정을 받는다고 한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중범죄의 경우, 우울증 진단서를 제출해도 심신미약으로 감형받는 경우는 드물다고 한다.

그나마 다행이다.

어떤 경우든 심신미약이 ‘살인면허’가 될 수는 없다.

심신미약자 범죄와 관련된 법과 제도를 현실에 맞게 재정비해야 하는 이유다.

법원은 심신미약을 엄격히 판단해야 한다.

채희창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