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신정권 시절 대학 캠퍼스 안에서 운동권 가요를 부르며 "박정희 물러가라" 등 구호를 외쳤다가 유죄가 확정됐던 현 한국거래소 고위 임원이 확정 판결 39년 만에 재심에서 무죄 선고를 받아 명예를 회복했다.

이은태(59) 한국거래소 부이사장은 서울대 사회계열 1학년이던 1978년 9월13일 관악캠퍼스 안에서 벌어진 시위에 참여했다.

이 부이사장 등 대학생들은 유신헌법 폐지를 요구하는 구호를 외치고 다른 학생들한테 유인물을 나눠줬다.

이들은 가곡 ‘선구자’와 가수 양희은의 노래 ‘아침이슬’ 등을 불렀다.

이후 교문 밖으로 나가 동작구 상도동 장승백이 버스정류장 부근에서 약 150명이 노량진 방면으로 스크럼을 짜고 경찰과 대치했다.

이들은 시위 내내 "박정희 물러가라" 등 구호를 외쳤다.

경찰은 "학교장의 사전허가를 받지 않은 불법시위로서 대한민국 헌법의 폐지를 주장하고 긴급조치를 공공연히 비방했다"며 이 부이사장 등을 입건했다.

이들한테 적용된 혐의는 1975년 유신정권이 발동한 이른바 ‘긴급조치 9호’ 위반죄였다.

긴급조치 9호는 ‘유언비어를 날조, 유포하거나 사실을 왜곡하여 전파하는 행위’를 처벌하도록 했다.

재판에 넘겨진 이 부이사장은 1979년 2월 서울지법 영등포지원(현 서울남부지법) 1심에서 단기 10개월∼장기 1년의 징역형 실형에 자격정지 1년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서울고법은 실형이 너무 과하다고 판단했는지 4개월 뒤인 1979년 6월 항소심에서 1심을 깨고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 자격정지 1년을 선고했다.

이 형량은 그대로 확정됐다.

그로부터 39년이 지나 서울고법 형사7부(부장판사 김대웅)는 24일 이 부이사장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이 사건 공소사실은 그 적용 법령인 긴급조치 9호가 당초부터 위헌·무효이므로 범죄가 되지 않는다"며 "그런데도 이를 유죄로 판단한 원심 판결은 긴급조치 9호의 위헌 여부에 관한 법리를 오해해 판결에 영향을 미친 위법이 있다"고 판시했다.

이어 "더 살펴볼 필요 없이 원심 판결은 더 이상 유지될 수 없다"며 긴급조치 위반 혐의에 무죄를 선고했다.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