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불붙은 기싸움 … 美 “핵사찰 먼저”에 北 “회담연기” 맞불북한과 미국이 8일(현지시간) 뉴욕에서 개최할 예정이었던 고위급 회담이 무기 연기되면서 북·미 2차 핵 담판이 장기 교착 상태에 빠질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미국이 ‘선 비핵화 후 제재 해제’ 입장에서 절대 물러서지 않음에 따라 북한이 김영철 북한 조선노동당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과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 간 고위급 회담을 전격적으로 연기하는 강펀치로 받아쳤다는 게 워싱턴 외교가의 해석이다.

미 월스트리트저널(WSJ)은 7일(현지시간) "북한이 조기 제재완화 같은 조치를 얻어내려고 미국을 압박하려는 시도라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분석"이라고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과 미 국무부는 이번 고위급 회담 연기를 단순한 ‘일정 조정의 문제’라고 애써 얼버무리려 한다.

그러나 지난 6·12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이후 지난 5개월 동안 북한 비핵화와 북·미 관계 분야에서 실질적 진전이 전혀 이뤄지지 않았고 양측 간 대립과 갈등이 깊게 자리를 잡았다.

WSJ는 북한이 고위급 회담 연기 통보를 하자 미국 정부 당국자들이 깜짝 놀랐다고 전했다.

미국 정부는 북한 인사들의 입국 준비를 하고 있다가 회담 직전에 취소 통보를 받았다고 WSJ가 보도했다.

워싱턴의 외교소식통은 "북한이 일정 연기를 미국에 통보한 시각이 6일 밤 12시였다"고 말했다.

이를 감안하면 미국은 북한 통보를 받자마자 즉시 회담 연기를 공개한 것으로 판단된다.

미국은 이번 뉴욕 고위급 회담을 북·미 실무급 회담을 시작하는 출발점으로 삼으려 했다.

폼페이오 장관은 지난달 8일 4차 방북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만나 양국 간 실무회담 개최 약속을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은 특히 북한이 트럼프-김정은 2차 회담을 간절히 바라고 있는 것으로 판단했다.

그런데도 2차 정상회담 준비를 위한 폼페이오-김영철 라인 회동을 북한 측이 무산시키자 미국 당국자들이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고 WSJ가 전했다.

미국은 2차 정상회담이 성사되려면 북한이 그 전에 미국에 양보 조처를 해야 할 것이라고 압박했다고 CNN방송이 이날 외교 소식통의 말을 인용해 전했다.

미국이 요구하는 사전 조처는 북한의 핵 프로그램 관련 시설을 국제적인 사찰단에 공개하는 것이었다고 CNN이 보도했다.

CNN은 "북한이 사찰 허용과 같은 비핵화 조처를 단행하기에 앞서 미국이 징벌 차원의 대북 제재를 풀어주기를 기대했으나 미국이 절대 먼저 움직이려 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폼페이오 장관과 김 부위원장 간 갈등도 회담 연기 사유 중의 하나로 작용했다고 CNN이 지적했다.

미국은 김 부위원장이 ‘구식이고, 협상하기에 너무 까다롭다’고 여기고, 북한도 폼페이오 장관이 트럼프 대통령과는 다른 말을 한다는 이유로 불만을 품고 있다고 한다.

북한이 2차 정상회담에 중대한 차질이 빚어질 위험을 감수한 채 김영철-폼페이오 라인 회담을 취소함에 따라 미국에서는 두 가지 해석이 나온다.

우선 북한이 미국의 양보를 얻어내려고 전략적으로 고위급 회담 연기라는 강수를 뒀다는 것이다.

외교소식통은 "김 부위원장이 고위급 회담을 위해 뉴욕에 오고자 했다면 최소한 베이징까지는 갔을 법도 한데 김 부위원장은 평양에 있었다"며 "베이징발 뉴욕행 항공편 예약도 비용을 지급하지 않은 상태였다"고 전했다.

그는 "일반적으로 국외 방문 의지가 확실하다면 항공편과 숙소는 대개 미리 예약해두지 않느냐"고도 했다.

이를 놓고 북한이 결국 핵무기를 포기할 의사가 없어 특유의 시간 끌기 전략을 동원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북한이 시간을 벌면서 핵·미사일 능력을 지속적으로 증대해 대미 압박을 가하려 한다는 것이다.

뉴욕타임스(NYT)는 이날 "북한이 현재 30∼60개의 핵폭탄을 보유하고 있고, 매년 6∼7개의 핵무기를 만들 핵물질을 생산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민서 기자 spice7@segye.com, 워싱턴=국기연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