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아시안컵 8강전이 끝났다.

한국은 한 수 아래인 카타르의 한 방에 짐을 쌓다.

어느 경기든 질 수도 있고, 이길 수도 있다.

하지만 15년 만에 4강 진입에 실패한 한국 축구는 많은 시사점을 남겼다.

아시아의 월드컵 대표로 지켜왔던 ‘4용’의 입지가 바뀌는 순간이다.

이란과 일본은 명맥을 유지하며 수성에 성공하였으나, 호주와 한국은 처음부터 출발이 불안하더니 결국 4강 문턱에서 아랍권 축구에 속수무책으로 무너졌다.

밤잠을 설치며 한국축구의 요행을 바랬으나 더 이상의 로또는 없었다.

이번 아시안컵을 쭉 지켜보며 답답한 나머지 스트레스만 쌓였다.

4강 진입 여부의 문제가 아니라 축구의 기본적 기술의 불비와 감독의 용병술 실종이 만들어 낸 총체적 부실 때문이다.

필자는 축구전문가가 아니지만 이번 아시안컵에서 한국축구를 마감하며 다음과 같은 문제를 제기한다.

첫째, 축구의 가장 기본기인 ‘패스’의 부재다.

흔히 한국축구는 ‘똥볼’이라는 말에 익숙해져 있다.

상대방을 1대1에서 제압할 수 있는 기술 없기 때문에 그들이 가로 막으면 우선 차고 보자는 것이 ‘똥볼’이다.

‘똥볼’이라도 차지 못하면 상대방에게 볼을 뺏기기가 일수다.

축구는 11명이 만들어낸 합작품이다.

이에 가장 기본적인 것이 ‘패스’다.

패스웍의 부재는 축구에서 이길 수가 없다.

약속된 유기적인 패스를 할 줄 모르니 어찌 기회를 잡을 수 있겠는가? 어떤 위치와 상황에서 아군이 어느 지점을 점령해야 하는지가 익숙해 져 있지 않다는 말이다.

따라서 논스톱 패스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공을 잡고 차는 축구는 이미 구시대 한물 간 축구다.

이런 축구를 아직도 구사하며 ‘벌떼’ 축구만을 지향하고 요행만을 기다리니 참으로 안타깝다.

결국 힘만 빠지고, 효율성은 없다.

한국의 패스를 조율하던 기성용 선수의 부상이 악재였지만 이를 대신할 선수가 없었고, 이 자리를 메운 황인범 선수의 송곳 패스는 찾아 볼 수가 없었다.

둘째, 축구는 11명으로 구성된 오케스트라로 하모니의 부재다.

축구는 혼자 하는 운동이 아니다.

11명으로 구성된 오케스트라다.

따라서 위치와 임무에 따라 제 역할을 다해야 한다.

하지만 이번 한국 축구의 조합은 대단히 문제가 있다.

외국 유명한 감독을 비싼 돈을 주고 모셔와 선수 선발과 기용이라는 전권을 주었지만 이에 많은 문제가 도출되었다.

끝까지 기본기와 센스가 없는 선수를 기용했다.

아랍권을 이기기 위해서는 아랍소리를 낼 줄 아는 선수를 선발하고 기용했어야 했다.

제 위치의 소리를 어떻게 내어야 되는지도 모르는 선수를 여기저기 기용했으니 오케스트라가 엉망일 수밖에 없다.

열심히 싸운 선수들을 거명해서 개개인에게는 미안하지만 매혹하게 말하자면 황트리오는 아니다.

골기퍼도 아니었고, 주세종도 지동원도 아니었다.

제 목소리를 내지 않았다는 뜻이다.

이러고 보니 선수 선발과 기용에 오류가 있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셋째, 축구는 타이밍으로 감독의 용병술이 매우 중요하다.

이번 경기에서만 보면 벤토 감독은 아집과 고집이 대단히 센 분이다.

이승우의 ‘물병차기’ 사건이 한 마디로 이를 대변한다.

당초 선수 선발에도 문제였지만 선발한 선수를 기용하는 것은 전적으로 감독의 역량이다.

기술이 떨어지더라도 팀웍과 정신력으로 충분히 극복할 수 있는 것이 축구다.

그리고 이를 극대화시키는 것이 타이밍이다.

그래서 그라운드에 지휘봉을 쥔 감독의 역할이 전부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번 아시안컵에서 벤토 감독의 용병술은 빛을 발하지 못했다.

베트남의 박항서 감독에 못미쳤다는게 일반적인 평이다.

카타르전만 보더라도 게임이 잘 풀리지 않으면 후반전에 진영을 새로 짜야했다.

선수교체도 빨리 이루어져야 했다.

벤치에 앉아 있기보다는 감독선에 나와 계속 선수를 지휘해야했다.

이런 면에서 카타르 산체스 감독에 비해 마니 소극적이었다.

선수들이 죽기 살기로 뛰고 이겨야 되겠다는 악착같은 의지가 보이지 않았다.

지쳐있는 손흥민에게 찔러주는 패스가 거의 없음에도 이를 방관했다.

황희찬과 황의조를 끝내 고집했지만 반 박자 빠른 슛, 논스톱 슛을 때리지 못하는 선수였다.

패스도 그렇지만 골게터는 머리회전과 센스가 생명이다.

공을 잡고 끄는 순간 벌써 늦은 것인데 이 공격수들은 선진 축구를 하지 못하고 한국의 고질병에 이미 걸려 있었다.

아쉽지만 오프사이드 슛 판정은 공격수의 순간적인 위치변경을 하지 못한 미숙함의 결과라 볼 수 있다.

넷째, 선수 선발과 기용은 감독의 전유물이 될 수 없다.

감독이 바뀔 때마다 자기 스타일의 선수를 선발한다.

누가 호날두나 메시를 두고 자기 스타일이라고 말하겠는가? 기본기와 기술이 있고, 머리와 센스가 있으며, 축구 근성을 가진 선수라면 그런 선수를 선발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이번 아시안컵 대표선수 선발에는 아쉬움이 많다.

그래도 동양권과 아시아권에서는 큰 신장의 김신욱과 석현준의 존재감이 빛을 발한다.

카타르에서 뛰는 남태희와 아랍권을 잘 아는 이근호, 부상에서 회복을 한 권창훈을 불렀어야 했다.

골기퍼로 김승규만을 고집했지만 불안하기 짝이 없었다.

김진헌과 조현우에게도 기회를 주어야 했다.

장현수가 없는 수비수도 계속 불안했다.

주세종, 홍철, 황인범은 제 몫을 다하지 못했다.

손흥민은 지쳐있었고, 황의조와 황희찬을 골게터로서의 면모를 전혀 보여주지 못했다.

오직 김민재와 이용 만이 제 구실을 다했다고 볼 수 있다.

카타르전 체력이 소진될 무렵 젊은 정승현과 권경원을 투입하여 체력전을 불사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이른 기성용과 이재성의 부상은 이번 시합의 악재 중의 악재가 되었다.

손흥민을 향한 기성용의 송곳 패스가 경기 내내 아쉬움으로 남았다.

패배이후 감독의 질타는 어쩔 수 없이 뭇매를 맞는다.

이제 축구를 보는 국민의 눈높이도 무시할 수 없다.

감독이 입맛대로 선수를 선발하고 기용하였다면 그 책임을 지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선수의 선발과 기용이 감독의 전유물이 될 수 없다.

이를 지켜 본 국민의 욕구도 만족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늘 감독자리는 외로운 자리다.

이번 아시안컵은 우리국민에게 많은 흥밋거리와 기대를 갖게 했다.

베트남의 박항서 매직이 흥분을 시켰고, 59년만에 아시안컵 우승을 막연히 기다렸기 때문이다.

이제 이 두 가지 시나리오가 서막을 내렸다.

한국 축구는 ‘기본기인 패스 부재와 골게터들의 반박자 빠른 슛 부적응’ 이라는 과제를 다시 한 번 남기며 4년 후를 기약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