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기 이후 세계 경제와 국제금융시장이 ‘뉴 노멀’ 시대에 접어들었다. 규범과 이론이 통하는 ‘노멀’ 시대에 대비되는 개념이다. 앞으로는 미래 예측까지 어려운 ‘뉴 애브노멀’ 시대가 닥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기업 분야가 심하다.
◇ 세계 10대 부호되는 기간 단축 30년→10년 규범과 이론이 흔들리면 관행과 경륜에 의존해야 혼돈을 바로 잡을 수 있다. 하지만 국가나 기업 차원에서 ‘아웃사이더 전성시대’다. 오히려 경륜이 많은 최고경영자(CEO)일수록 수난을 겪고 있다. 현 정부의 비우호적인 기업정책에다 노조와 시민단체의 힘이 부쩍 커진 한국이 심하다.
문제는 세계 경제 질서, 정치, 정책에 있어서 종전의 규범과 관행에 의존하지 못함에 따라 기업 경영 환경은 더 혼돈에 빠지고 있는 점이다. ‘불확실성 시대(케네스 갤브레이스)가 나온 지 40년이 지났지만 오히려 ‘초불확실성 시대(배리 아이켄그린)’에 접어들었다. 이전보다 커진 심리요인과 네트워킹 효과로 긍(肯·긍정)과 ‘부(否·부정)’, ‘부(浮·부상)’와 ‘침(沈·침체)’이 겹치면서 앞날을 내다보기가 힘들어 졌기 때문이다.
초불확실성 시대가 무서운 것은 어느 날 갑자기 ‘큰 변화(Big change)’가 온다는 점이다. 규범과 관행에 의존하다보면 과감한 개혁과 혁신을 줄 수 없어 ‘작은 변화(Small change)’만 생긴다. 하지만 의존하고 참고할 만한 규범과 관행이 없으면 창의적이고 유연한 사고로 개혁과 혁신을 생존 차원에서 추진할 수밖에 없어 어느 순간에 큰 변화가 닥치고 기업은 뒤처진다.
‘빅 체인지’, 즉 큰 변화에 성공한다면 그에 따르는 보상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크다. ‘세계가 하나’로 시장이 넓어졌기 때문이다. 세계 10대 부호에 들어가려면 노멀 시대에는 최소한 30년이 걸렸으나 뉴 노멀 혹은 뉴 애브노멀 시대에는 10년 이내도 가능하다. 구글과 페이스북 창업자 등이 대표적인 예다.
‘뉴 애브노멀·빅 체인지’ 시대에 가장 신경을 써야 할 것은 ‘리스크 관리’다. 일등 기업이 됐다고 승리에 도취돼 있으면 곧바로 ‘승자의 저주(Winner’s curse)’에 걸리기 때문이다. 우리의 경우 중국의 사드배치 보복을 앞두고 면세 사업권을 따내 성공을 자축했던 국내 백화점 업계가 지금은 대부분 사업권을 반납했거나 아직도 고민하는 경우다. 삼성전자가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두가 궁금해 한다.
‘지속 가능한 흑자경영’은 모든 기업이 추구하는 목표다.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기업은 성장 동력을 개발하고 고객가치 창출과 전략을 설계하고 경영 프로세스를 개선하는 노력을 끊임없이 경주한다. 하지만 베인 앤 컴퍼니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지난 10년 동안 현실 비즈니스 세계에서는 이 목표를 달성해 생존한 기업은 10%도 채 못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 한국기업, '저성장 늪'…창업자 정신 되살려야 종전에는 지속 가능한 흑자경영 달성에 실패하는 것을 시장점유율 하락, 경쟁 격화, 기술진보 부진 등과 같은 외부요인에서 찾았다. 하지만 '뉴 애브노멀·빅 체인지‘ 시대에는 오너십 약화, 의사결정 지연, 현장과의 괴리 등 내부요인에 더 문제가 있다. 기업이 성장함에 따라 내부적인 복잡성이 증가하고 초창기 왕성했던 창조적인 문화, 임직원의 주인의식이 약화되는 ‘성장의 함정’과 ‘승자의 저주’에 빠지는 것이 결정적인 원인이다.
기업은 성장할수록 가장 먼저 '과부하 위기'가 찾아오면서 급속한 사업팽창에 따라 신생기업이 겪는 내부적인 기능 장애에 봉착한다. 과부하 위기는 '속도 저하(Stall-out)' 위기로 전이돼 기업규모가 커짐에 따라 조직의 복잡성이 증가하고, 초창기 조직을 이끌었던 명확한 창업자적 미션이 희미해짐에 따라 성장둔화를 겪게 된다. 속도 저하 위기가 무서운 것은 곧바로 '자유 낙하(Free fall)' 위기로 악화돼 창업자 정신을 상실한 기업일수록 주력 비즈니스 모델의 경쟁력을 잃게 되고, 핵심 시장에서 퇴출당하는 현상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그 어느 때보다 한국 기업은 ‘저성장 늪’에 빠져 성장 미래를 찾는데 골몰하고 있다. 더 우려되는 것은 성장둔화 요인을 중국의 추격 등과 같은 외부요인에서 찾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 기업인 스스로의 도피다. 기업 내부적으로 창업자 정신에 기반해 모든 조직원이 주인의식을 갖고 있는지, 철저하게 현장 중심적 의사결정과 사고체계를 갖고 있는지, 그리고 뚜렷한 고객층을 위한 반역적 미션을 갖고 있는지를 반문해 볼 필요가 있다.
창업자 정신은 ‘반역적 사명의식’과 ‘현장 중시’, ‘주인 의식’이라는 세 가지 특성을 갖고 있다. 이 정신은 성장을 막 시작한 기업이 자신보다 규모가 훨씬 크고 경영여건이 잘 갖춰진 기존 기업에 도전할 때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된다. 창업자가 직접 이끄는 기업이나, 직원이 일상적인 결정과 행동방식에 준거의 틀로 삼는 규범과 가치에 창업자의 영향력이 남아 있는 기업일수록 흑자경영을 달성하면서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다.
주식투자도 창업자 정신 뛰어난 기업 주식일수록 높은 수익을 낸다. 투자자들은 이 점에 주목해야 한다.
한상춘 / 한국경제신문 객원논설위원 겸 한국경제TV 해설위원(sc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