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제전환국을 가다 ③ 베트남/ 北·美 정상회담 앞두고 큰 관심/1986년 개혁·개방 정책 도입/성공한 사회주의 국가로 주목/北 경제개발 ‘롤모델’ 될 가능성지상 270m 높이 ‘롯데호텔 탑 오브 하노이’에 올라 베트남 수도 하노이의 전경을 한눈에 담았다.

전망대 어느 위치에서도 도시 곳곳의 고층 빌딩과 공사 현장이 눈에 보였다.

도로에 가득 찬 차량과 오토바이의 시끄러운 소리마저도 힘차게 비상하는 이 나라의 활력을 상징하는 듯했다.

15년 전 방문 당시 최고 수준이었던 맞은편 대우호텔이 이제는 왜소해 보였다.

오는 27∼28일 2차 북·미 정상회담 개최 확정으로 베트남이 부상하고 있다.

베트남은 시장경제 시스템을 받아들여 성공한 대표적인 사회주의 국가다.

특히 1986년 실시한 개혁·개방 정책인 ‘도이머이(Doi Moi·혁신)’가 북한 경제개발의 ‘롤모델’이 될 가능성이 커지면서 더욱 주목받고 있다.

세계일보는 지난해 12월 17일부터 20일까지 3박4일 동안 하노이 현지에서 도이머이의 어제와 오늘과 미래의 모습을 살펴보고, 북한식 개혁·개방 노선의 성공 가능성도 모색했다.◆미래 베트남 ‘첨단산업의 수도’… 호아락 하이테크 파크에 가보니 "당신들의 미래를 알고 싶다"는 요청에 베트남 안내인은 "미래 과학수도를 목표로 건설 중"이라는 답변과 함께 호아락 하이테크 파크(Hoa Lac Hi-Tech Park)를 소개했다.

하노이 도심에서 서북쪽으로 30분 정도 차를 타고 들어가니 황톳빛 대지가 눈에 들어왔다.

서울 여의도 면적(290ha)의 5배에 해당하는 1586ha(480만평)의 광활한 대지 곳곳엔 인부와 함께 거대한 중장비와 트럭들이 쉴 새 없이 움직이며 한창 작업 중이었다.

베트남 안내인은 "현재 공정의 약 35%가 진행 중"이라며 "300개 기업 유치가 목표인데, 현재 87개 기업이 확정됐다"고 했다.

또 "2030년까지 22만9000명이 상주하는 과학도시 건설이 목표"라고도 했다.

그는 "건설 진척이 더딘데, 이곳엔 아무 기업이나 들어올 수 없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대학교와 연구소 및 연구·개발(R&D) 시설, 바이오·자동화 기업 등 첨단산업 기술기업만 입주가 가능하다.

이곳은 미래 경제전쟁 생존을 위한 베트남 정부의 국가 프로젝트인 것이다.

이곳은 하노이 중심에서 약 30km 떨어진 외곽에 있다.

노이바이 국제공항에서 60km, 동부 떠이선 항구에선 20km, 북부 최대 항구인 하이퐁에서도 불과 150km 밖에 있을 정도로 요충지다.

베트남 정부가 입지 선정 당시 고심한 흔적이 엿보인다.

한화그룹이 이곳에 항공기 엔진 부품 제조 공장인 ‘한화 에어로 엔진스’(Hanwha Aero Engines)를 세웠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과 코이카(KOICA·한국국제협력단) 지원으로 한·베트남 과학기술원(V-KIST)도 곧 설립된다.

◆1986년 도이머이로 개혁·개방 천명…30년간 연평균 6% 중반 고속성장 베트남 도이머이는 ‘부분적인 급진개혁’(small bang·스몰뱅)이 특징이다.

중국 점진주의와 동유럽 체제전환국의 급진주의를 혼합했다.

계획경제에서 시장경제로의 이행 핵심은 자유가격 체계다.

베트남은 동유럽처럼 이를 신속하게 도입했다.

대외원조와 외국인 직접투자 유치 등 대외개방 정책도 적극적이었다.

반면 국민 대다수가 농민이라는 점을 감안해 농업개혁은 단계적으로 추진했고, 국영기업 개혁도 부실기업 정리와 통합에 중심을 둔 점진적 개혁을 채택했다.

이는 중국과 유사한 방식이다.

물론 자유가격제 도입의 급진적 채택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었다.

베트남은 낮은 저축률과 미국 주도 경제제재로 서방 선진국의 양허성 원조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외국투자를 받기 위해서는 세계은행이나 국제통화기금(IMF)의 급진적인 요구를 수용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이런 스몰뱅 방식의 개방정책이 대미 관계 개선과 맞물리면서 베트남은 지난 30년간 연평균 6% 중반의 고속성장을 했다.

개혁 초기 저소득국이었던 베트남은 2009년 중소득국으로 올라섰다.

2017년 현재 1인당 국민총소득(GNI)은 2170달러로 인도와 비슷하다.

통상 1인당 GNI가 996달러에서 3896달러 사이면 하위 중소득국으로 분류된다.

베트남은 1990년대에는 전체 인구 50% 이상이 하루 소득 1.9달러 이하 빈곤 상태였지만 2014년엔 빈곤율이 2%대로 떨어졌다.

◆대미 관계 개선이 핵심…북, 비핵화 후 미국과 수교해야베트남 도이머이의 성공은 결국 대미 관계 개선이 핵심 변수였다.

미국 클린턴 행정부가 1994년 제재 전면해제를 발표한 데 이어 국제사회 지원이 본격화하면서 경제 성과가 가시화했다.

이는 앞서 베트남 정부가 1989년 캄보디아에서 병력을 철수해 미국의 신뢰를 확보한 것이 결정적 계기가 됐다.

북한도 신속한 비핵화를 통해 미국의 신뢰를 확보하고, 대미 관계를 개선하는 작업이 선행되어야 한다.

앞서 미국은 베트남전 이후 국교를 단절하는 한편 경제제재 조치를 단행해 재화·용역·기술 교류를 전면 금지했다.

서방 국가도 이에 동참하면서 베트남의 경제·외교적 고립은 심화했다.

이어 1979년 중·베트남 전쟁이 터지면서 경제 상황이 급격히 악화했다.

만성적 식량 부족과 700%가 넘는 살인적인 인플레이션 상황이 초래되자 생존을 위해 찾은 방법이 바로 개혁·개방과 대미 관계 개선이었다.

베트남군의 캄보디아 철수를 계기로 1990년 미국은 베트남과 정부 간 대화를 재개하고, 1993년 7월 국제기구의 베트남 융자도 허용했다.

1995년 베트남과 수교했다.

미국과의 수교를 계기로 베트남은 외국인투자법을 개정해 외국인 직접투자를 더욱 확대하는 개방정책을 이어갔다.

1995년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에 처음 가입했으며, 1999년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에도 가입했다.

2007년 세계무역기구(WTO) 회원국이 되면서 글로벌 경제 체제에 본격 편입됐다.

특히 도이머이가 주목을 받는 것은 같은 사회주의 국가이면서도 중국과는 다른 베트남 공산당 중심의 개혁·개방 과정에 있다.

중국식 개혁·개방은 공산당과 국무원(정부)을 분리해 국무원에 힘을 실어주는 방향으로 진행됐다.

그러나 베트남은 공산당이 개혁·개방을 주도했다.

개혁·개방을 공산당이 주도했다는 점에서 현재 북한 현실에 더 적합하다는 전문가들의 분석이 있다.

지난해 12월 리용호 북한 외무상이 베트남을 방문했을 당시에도 공산당 주도의 개혁·개방과 급격한 체제 변동에 따른 민심 이반을 다독이는 방안을 연구했을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한 현지 전문가는 "베트남 경제 전문가들이 ‘북한이 우리(베트남)를 롤모델로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는 말을 많이 한다"고 전했다.

한 베트남 전문가는 "우리도 계획경제에서 자본주의 경제로 옮겨갈 때 ‘쿠바식’이냐 ‘중국식’이냐를 놓고 고민이 많았다.현재 북한의 고민이 이해가 간다"고 언급했다.

하노이=글·사진 이우승 특파원 wslee@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