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적 인플레·생필품 부족 탓 이미 300만명 엑소더스 / 콜롬비아 국경엔 탈출행렬 여전 / 난민 상당수 가족 두고 홀로 떠나 / 정부, 美 지원 구호물자 수령 거부 / 이웃나라 해상·영공 등 국경 봉쇄 / 마두로 “거지 아냐”… 러 지원은 수용 / 과이도 등 野 구호물자 반입 총력 / 23일 수송 작전…정부와 충돌 예고살인적 인플레이션과 생필품·기초의약품 부족 사태로 이미 300만명이 나라를 떠난 베네수엘라에서 다시 ‘엑소더스’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경제난이 악화하는 데다 ‘두 명의 대통령’ 사태로 정국까지 불안해지면서다.

20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베네수엘라·콜롬비아 접경지역 쿠쿠타에는 매일 수천명의 베네수엘라 난민들이 도착한다.

이들은 대부분 해발 3000m가 넘는 안데스산맥을 걸어서 이동한다.

월급으로는 버스표 한 장 구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볼리바르(베네수엘라 화폐단위)는 종이접기에 사용될 정도로 가치가 추락했다.

NYT가 만난 5명의 가족은 1만 콜롬비아페소를 가지고 있었는데, 3달러 가치밖에 안 된다.

수도 카라카스에서 출발했다는 프레디 론돈은 고산지대가 익숙지 않은 듯 "이런 추위는 처음"이라고 투덜거렸다.

난민들 발바닥은 물집과 피로 범벅이 된다.

이동 과정에서 아이를 낳거나 유산하는 일도 생긴다.

콜롬비아 팜플로나 마을에 사는 마사 듀크는 이들의 처량한 모습을 보다 못해 임시거처를 만들고 성금을 모아 음식과 침구류를 제공하기 시작했다.

히치하이킹에라도 성공하면 행운이다.

도로를 지나던 트럭 운전수가 이들을 태워주자 화물칸을 가득 메운 100여명 중 누군가가 "전능하신 신의 축복을 찬양하자"고 외친다.

이들 상당수는 홀로 나라를 떠나왔다.

에콰도르나 페루 등지에서 돈을 벌어 고향에 돈을 부치기 위해서다.

홀로 일자리를 찾아 나선 다니엘 버뮤데스는 "집을 떠날 때 여섯 살배기 아들이 여행가방을 든 내 모습을 보고 ‘아빠, 돌아오지 않을 거죠’라고 했다"고 회상하며 눈물을 흘렸다.

그는 "물론 돌아갈 거다.하지만 지금 내 처지를 보라"며 "너무 멀리 떠나와 버렸다"고 했다.

노마 로페스는 다섯 아이와 태어난 지 6일 된 아기를 데리고 베네수엘라를 떠났다.

그는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이 자기를 지키기 위해 10대 남자아이들을 징집할 것이라는 소문을 들었다"며 "그때 탈출을 결심했다"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지만 베네수엘라 정부는 미국 등이 보낸 인도주의적 구호물자 수령을 여전히 거부하고 있다.

델시 로드리게스 부통령은 이날 국영 VTV에 나와 네덜란드령 아루바, 보네르, 퀴라소 등 3개 섬나라와 베네수엘라 간 해상과 영공 봉쇄 방침을 재확인했다.

이들 섬나라가 원조물자 중간 공급지 역할을 자처하면서다.

로드리게스 부통령은 "베네수엘라 이웃국가를 통해 물자를 반입하려는 시도는 우리 주권을 무시하는 것"이라며 "(미국이) 베네수엘라를 접수하려는 목적에서 추진하는 이 쇼에 퀴라소 정부가 참여하기로 했다는 사실은 국경 폐쇄와 함께 관계 수정을 의미한다"고 경고했다.

베네수엘라의 이날 결정은 ‘임시대통령’을 자처한 후안 과이도 국회의장 등 야권이 구호물자 반입을 위해 선언한 디데이(D-Day)를 사흘 앞두고 나왔다.

미국과 국제사회가 제공한 원조물품은 베네수엘라 정부가 브라질, 콜롬비아와의 국경 도로를 컨테이너 등으로 봉쇄한 탓에 현재 인근 창고에 쌓여 있는 상태다.

과이도 의장은 구호품 수송작전에 참여할 자원봉사자가 이미 60만명 이상 모였다고 밝혀 23일 정부 측과 거센 충돌이 예상된다.

마두로 대통령은 "우리는 거지가 아니다"라며 미국의 원조를 거부하면서도 러시아 측 지원은 수용하고 있다.

그는 이날 "러시아에서 300t 이상의 의약품과 의료장비가 공수됐다"고 말했다.

유태영 기자 anarchyn@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