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지는 마시라. 그냥 영화 제목일 뿐이니까 말이다.

이 영화는 2008년도 아카데미 작품상, 감독상, 남우주연상, 각색상을 휩쓸었다.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노인 문제를 다룬 영화가 아니다.

총격전이 벌어진 현장을 발견한 주인공이 죽어가는 생존자를 구하는 대신 2백만 달러가 들어 있는 가방을 주워갔다가 벌어지는 스릴러다.

코맥 매카시의 원작을 코엔 형제가 영화화했으니 어려우면서도 재밌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제목을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

노인을 공경하지 않는 세태를 비판하는 영화가 아니다.

여기서 노인이란 '오래된 지혜를 가진 현명한 생각의 소유자'를 말한다.

그렇다고 해서 무턱대고 노인을 예찬하는 영화는 더욱 더 아니다.

여기서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는 것은 노인처럼 현명한 사람들이라면 충분히 예측할 수 있을 정도로 쉽게 돌아가는 세상은 없다는 뜻이다.

노인도 예측할 수 없으니 젊은이들은 오죽하겠는가. 우리 아버지가 무척이나 늙으셨구나, 아버지도 이젠 노인이구나,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던 날의 기억이 생생하다.

그때 아버지 나이가 딱 쉰이었다.

그런데 지금 내 나이가 그때 우리 아버지보다 많다.

하지만 난 내가 노인이라는 생각을 단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다.

노인이라니…. 택도 없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몇 살부터 노인이라고 해야 하나? 나라마다 사람들이 느끼는 노인의 기준이 다르다.

2018년 세계 24개 나라의 16세 이상 사람들에게 몇 살부터 노인이라고 생각하는지 물어봤다.

세계 평균은 63세였지만 나라별로 차이가 컸다.

인도네시아 사람들은 51세라고 대답했다.

하지만 이탈리아 사람들은 72세는 되어야 노인이라고 여겼다.

아마 24개 나라 가운데에 마다가스카르는 없었을 것이다.

몇 년 전 마다가스카르를 몇 주 여행하는 동안 나는 나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을 단 한 명도 만난 적이 없었으니까 말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59세부터 노인이라고 대답했다.

정작 노인들의 생각은 다르다.

서울시가 서울에 사는 65세 이상의 노인들에게 물어보니 그들이 생각하는 노인의 기준 연령은 73세였다.

평균적인 시민들의 생각과는 무려 열네살이나 차이가 났다.

그러니 예순대여섯살 정도에 노인정에 발을 들여놓기가 어렵다는 말이 들릴 수밖에. 평균적인 시민이나 노인들이 생각하는 것과는 상관없이 우리나라 노인복지법이 정한 노인의 기준 연령은 만 65세다.

65세면 지하철을 공짜로 탈 수 있고 웬만한 박물관이나 과학관은 무료로 입장할 수 있다.

그 정도는 해드려야 한다.

그렇지 않아도 노인들은 힘들게 산다.

그들은 여전히 생계를 스스로 꾸려야 한다.

서울에 사는 노인의 35퍼센트는 일을 한다.

또 평균 두 개의 질환을 앓고 있다.

나는 분명히 학교에서 배웠다.

서양의 노인들은 외롭게 살지만 우리나라 노인들은 자식들의 부양을 받으면서 행복하게 산다고 말이다.

새빨간 거짓말이다.

서울 노인의 62퍼센트는 혼자 살거나 다른 노인과 함께 산다.

대부분의 노인은 젊은이의 부양을 받지 않는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하지만 거의 노인만으로 구성되는 나라는 곧 생길 것 같다.

바로 우리나라 이야기다.

65세 이상의 인구와 14세 이하의 인구를 비교해 보자. 누가 많을까? 1970년에는 14세 이하는 43퍼센트인데 비해 65세 이상은 3퍼센트에 불과했다.

전형적인 피라미드형의 인구분포를 보였다.

하지만 2018년에는 65세 이상과 14세 이하가 모두 14퍼센트를 장벽을 넘어섰다.

각각 방향이 반대일 뿐이다.

이미 노인이 어린이보다 많은 나라다.

2030년이면 노인이 어린이보다 두 배 많아지고 2040년이면 세 배가 될 것이다.

이게 현실이다.

김대중 정부 때부터 노인들을 위한 복지 제도가 속속 생겨났다.

노인복지센터도 곳곳에 세워졌다.

노인들을 위한 일자리를 고민하고 있다.

여기서 한 발짝 더 넘어설 때가 되었다.

출산 장려 정책과 별개로 노인을 위한 다양한 복지 시설이 필요하다.

과학관도 마찬가지다.

과학관 정책의 방향이 원리 중심의 청소년 대상에서 놀이 중심의 유아·어린이 대상으로 바뀌고 있다.

국립어린이과학관의 성공은 5대 국립과학관에 어린이전시관을 따로 만드는 정책을 이끌어냈다.

그런데 궁금하다.

5대 국립과학관은 이미 어린이 중심이었는데 얼마나 더 어린이 중심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말일까? 게다가 어린이와 유아의 수는 급격히 줄고 있는데 말이다.

어린이 과학관이 출산 장려 정책은 아닐 것이다.

역발상이 필요하다.

이제는 노인을 위한 과학관도 필요하다.

이정모 서울시립과학관장 (penguin1004@m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