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톡톡] 성중립 화장실 논란2017년 11월, 정태영 현대카드 부회장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현대카드 본사의 화장실들을 남녀공용으로 개조하기 위해 2년째 디자인을 연구하여 완성단계"라는 내용의 글과 함께 ‘ALL GENDER RESTROOM(성중립 화장실)’ 사진을 올렸다.

성중립 화장실에 대해 낯설었던 당시 사회 분위기에 파문을 일으킬 만한 내용이었고, 설치 찬성과 반대 측이 격렬히 대립해 이슈가 됐었다.

그로부터 약 1년 3개월이 흐른 지금, 정 부회장이 공언한 화장실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성중립 화장실이란? "모두의 화장실"성중립 화장실은 남성과 여성뿐 아니라 동성애자, 트랜스젠더, 젠더리스(자신의 성별을 특정하지 않은 사람) 등과 같은 성소수자도 마음 놓고 이용할 수 있는 화장실이다.

최근에는 사용자 범주에 이성 보호자와 동행한 장애인-노인-유아 등 평소 남녀화장실을 마음 놓고 이용할 수 없는 사람들도 추가하는 추세다.

인권 시민단체 ‘성평등프로젝트팀’의 ‘꼬막’ 활동가는 20일 세계일보와의 통화에서 "성중립 화장실을 ‘모두의 화장실’이라고 했으면 좋겠다"라며 "성소수자뿐 아니라 한부모 가정의 아버지가 딸과 들어갈 수 있다던가 다양한 장애를 가진 사람들도 편하게 이용할 수 있는 화장실이 되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논의되고 있는 성중립 화장실의 형태는 다양하다.

잠금장치가 있는 1인 화장실 안에 변기, 세면대 혹은 샤워시설 등이 함께 있거나 세면대를 사용하는 공용공간 옆에 바닥부터 천장까지 옆 칸과 빈틈없이 막힌 개인 공간이 칸칸이 있는 디자인도 있다.◆현대카드 화장실, 성중립 화장실로 볼 수 있을까결론부터 말하자면 최근 리모델링을 진행 중인 현대카드 본사 화장실은 엄밀히 말해 성중립 화장실이 아니라는 분석이 우세하다.

현대카드 관계자에 따르면 리모델링된 화장실은 남녀화장실까지 가는 통로가 하나일 뿐 그 안은 기존 화장실과 마찬가지로 남자화장실과 여자화장실로 나뉜다.

각 화장실 내부 모습도 칸막이가 설치된 대변기, 세면대 등 일반 공중화장실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한다.

이는 정 부회장이 페이스북에서 설명한 ‘요즘 유럽과 미국에서는 보수적인 회사들조차 앞 다투어 바꾸고 있다는 남녀공용’과도 거리가 멀다.

또 정 부회장이 논란 당시 다시 올린 글에서 ‘입구와 동선이 달라서 마주치는 일이 없으면서 일부 공간은 공통적이고 가변적으로 하여 효율을 높인’ 화장실도 아니다.

이를 두고 정 부회장의 아이디어를 현실화하기엔 감당해야 할 위험부담이 커 현대카드 측이 안전한 선택을 했다는 분석도 나온다.◆해외서 확산 추세... 뉴욕 트럼프타워에도 있어해외 주요 선진국에선 성중립 화장실 도입이 확산되는 분위기다.

시작은 2010년 미국에서부터다.

미국 캘리포니아주에 있는 롱비치 캘리포니아주립대 화장실에서 한 트랜스젠더 학생이 화장실에서 다른 남학생에게 폭행을 당한 사건이 계기였다.

당시 피해 학생은 "LGBT 혐오를 가진 남학생이 화장실로 따라와 폭행했다"고 진술했다.

2015년에는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의 지시로 백악관 내에 성중립 화장실을 설치했으며, 캘리포니아주는 2017년부터 모든 공공건물에 성중립 화장실 설치를 의무화했다.

뉴욕 트럼프타워에도 성중립 화장실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스웨덴-캐나다 등도 성중립 화장실을 확산하고 있으며 일본은 2020년 도쿄올림픽에 대비해 공공시설 등에 성중립 화장실을 설치할 예정이다.

중국 베이징 대표 유흥가인 산리툰-난뤄구샹에도 있으며 대만에선 고층빌딩 ‘타이베이101’ 같은 관광 명소뿐 아니라 일부 대학과 고교에서도 성중립 화장실을 볼 수 있다.◆국내는 소수 시민단체에 집중... 서울시 도입하려다 반대 부딪혀반면 국내 여론은 부정적인 편이다.

진보적 시민단체나 정치권 일각에서 성중립 화장실 도입을 추진했지만 반대에 막혀 힘을 쓰지 못하는 모양새다.

지난해 6·13 지방선거에서 녹색당 고은영 제주도지사 예비후보, 민중당 홍성규 경기도지사 후보, 정의당 김응호 인천시장 예비후보 등이 성평등 관련 공약의 일환으로 성중립 화장실 설치를 약속했으나 실현되지 못했다.

서울시도 2017년 12월 성중립 화장실 개념의 ‘모두를 위한 화장실’에 관한 내용을 인권정책 기본계획 초안에 담았다가 시민들의 반발에 부딪혀 본안에서는 배제했다.

현재 국내에서 성중립 화장실을 도입한 곳은 ‘인권재단 사람’, ‘한국다양성연구소’, ‘살림의원’ 등 시민단체 몇 곳과 스타트업을 지원하는 ‘구글 캠퍼스 서울’ 등 소수다.

성공회대 등 대학가에서도 성중립 화장실을 도입하려다 논란이 커져 잠정 보류된 상태로 전해진다.◆"범죄 우려" vs "제도 정비해야"성중립 화장실 설치 반대 측은 이 화장실이 불법촬영과 성추행 등 성범죄의 표적이 될 수 있고, 해당 화장실 이용자가 본인의 의지와 관계없이 성소수자로 보일 수 있다고 우려한다.

특히 2016년 서울 강남역 한 남녀공용화장실에서 살인사건이 일어나며 "남녀화장실을 분리해야한다"는 사회적 목소리가 커졌기에 성별 개념을 두지 않는 성중립 화장실이 위험하다고 주장한다.

반면 찬성 측은 성소수자에게 사회적 낙인을 찍는 문화부터 바꿔야 한다고 반박한다.

또한 1인실 형태의 성중립 화장실은 화장실 내에서 다른 이성을 마주칠 우려가 없으며 불법촬영 등의 성범죄는 근본적으로 ‘몰카’ 자체를 규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불법촬영용 카메라가 버젓이 팔리고 가해자에게 ‘솜방망이’ 처벌이 내려지는 현 상황부터 뜯어고쳐야 한다는 것이다.

강명진 서울 퀴어문화축제 조직위원장은 통화에서 "정부 차원에서 하는 정책 중 하나가 ‘몰카’ 같은 게 많으니 양성을 분리하는 공공화장실을 만들겠다는 건데 이런 방식의 분리가 범죄 발생에 대한 대안이 될까"라며 "단기적으론 맞지만 장기적 대안은 아니라고 본다.‘몰카’ 범죄가 발생하지 않도록 사회적 방안을 논의하고 관련 규제를 정비하는 게 맞다"고 꼬집었다.

인식 확산 캠페인과 함께 점진적인 도입으로 부작용을 줄여야 한다고 제안하기도 했다.

‘꼬막’ 활동가는 "전면적으로 모든 화장실을 성중립 화장실로 바꾸자는 게 아니고 단계별로 실행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예를 들어 한 층에 남자화장실, 여자화장실, 성중립 화장실이 있는 게 아니라 1층이 (장애인도 쓸 수 있는) 성중립 화장실, 2층이 여자화장실, 3층이 남자화장실 등처럼 조금씩 바뀌어 나가도록 해야한다"고 말했다.

나진희 기자 najin@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