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쳤어요, 지금? 이게 뭐 하는 짓입니까?" 일촉즉발의 상황에서도 신경질 한 번 내지 않았던 전공의가 언성을 높였다.

30번 침대엔 술에 만취해 인사불성이 된 중년 남성이 앉아 있었다.

멋대로 바늘을 뽑아버린 손목에서는 피가 뚝뚝 떨어졌다.

그는 치료를 받지 않겠다며 막무가내로 손을 휘적댔고, 자의퇴원서 내용을 안내하는 의사를 밀쳐냈다.

불호령도 소용이 없었다.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던 남자는 털썩 침대에 누웠고 다시 단잠에 빠졌다.

'힘들다', '쉴 틈이 없다', '인력 부족이 심각하다'…응급실 환경의 열악함은 각종 보도와 영화, 드라마 등 매체를 통해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하지만 백문(百聞)이 불여일견(不如一見)이라, 는 국내 응급의료체계의 실태를 보다 자세히 파악하기 위해 지난 19일 고려대학교 구로병원을 찾았다.

취재진은 19일부터 20일까지 문자 그대로 '24시간' 응급센터에 머물며 응급의료 종사자와 환자들이 처한 현실을 체험했다.

고대구로병원 응급센터는 하루 평균 200명의 환자가 방문하는 곳으로, 의사와 간호사가 각각 2교대와 3교대를 통해 매 시간 일정한 근무 인원(전문의 1명, 레지던트 2명, 인턴 2~3명, 간호사 12~15명)을 유지한다.

환자가 체류할 수 있는 침대는 총 30개, 간이침대를 활용하면 최대 40명까지 누워있을 수 있다.

그러나 주말에는 동시 체류 인원이 최대 60명, 명절에는 80명까지 몰리기 때문에 응급 환자들조차 비응급 환자 및 보호자를 위한 대기실을 이용해야 한다.

중증환자를 위한 권역의료응급센터지만, 경증 또는 비응급 환자의 방문도 잦다.

환자가 응급실에 도착하면 의료진은 가장 먼저 KTAS(Korean Triage and Acuity Scale, 한국형 응급환자 분류) 등급을 책정한다.

1급이 가장 위급한 상태이며 3급까지 응급환자로 분류된다.

4~5급은 준응급 또는 비응급으로, 건강보험 적용 대상에서 제외된다.

취재진이 병원에 있는 동안 방문한 환자의 비율은 3급(50%), 4급(20%)과 5급(20%), 2급(8%), 1급(2%) 순이었다.

전체 환자의 40% 정도는 권역센터가 아닌 2차 병원을 방문해도 무방한 상태였던 셈이다.

"눈이나 비가 오면 사고가 잦으니 환자도 더 많지 않냐고요? 전혀요." 센터장을 맡고 있는 윤영훈 응급의학과 교수는 "날씨가 나쁘면 '굳이 응급실에 오지 않아도 될 사람'은 집을 나서지 않는다"고 했다.

환자들은 일반병원들이 영업을 하지 않는 특정 시간대와 주말에 응급실을 찾기 마련이지만, 그와 별개로 비나 눈이 내리는 날보다는 맑은 날에, 식사 때(오후 12~2시, 6~8시) 보다 식사 시간 직후 환자가 많다는 것이다.

"사람을 살리기 위해 이 일을 하는데, 종종 회의가 들기도 해요." 허광렬 응급의학과 치프(Chief, 레지던트 4년차)는 "모든 사람은 자신의 병이 가장 중하다"며 "위중한 환자에 의료진의 관심이 집중되면 '포기할 사람은 포기하고 나 좀 봐달라'며 화를 내는 환자들도 많다"고 말했다.

다른 환자들에게 피해가 갈 만큼 소란을 피우거나 의료진을 폭행한 경우도 드물지 않다.

허 치프는 "작년엔 경찰서에 3번, 법원에 2번 다녀왔다"며 "잠잘 시간도 모자란데 여기저기 다니며 증언하기가 쉽지는 않다.그래서 의료진이 웬만해선 신고를 하지 않는다"고 부연했다.

오후 6시 30분 70대 노인이 '소변이 나오지 않는다'며 불편을 호소했다.

지병으로 인해 소변줄을 삽입한 상태인데, 줄과 연결된 주머니에 소변이 모이지 않는 걸 보니 줄이 막힌 게 분명하다고 주장했다.

의료진이 "환자분의 소변량 자체가 줄어 그렇게 느낄 수 있다.소변이 나오지 않는 게 아니라 아주 천천히 나와서 눈에 띄지 않는 것"이라고 안내했지만, 노인은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그는 "글쎄, 안 나온다니까"라며 신경질을 내다가 이내 "그럼 이왕 온 김에 소변 통이나 큰 걸로 바꿔달라"고 요구했다.

"당장 불편하실 순 있겠으나 '응급' 질환은 아니니까요." 또 다른 전공의는 24번 환자에게 퇴원을 설득 중이었다.

혈액 검사와 CT 촬영 결과 아무런 이상이 없었지만, 계속해서 어지럼증을 호소하는 환자였다.

전공의는 "원한다면 MRI도 찍어볼 수 있지만 결과는 크게 다르지 않을 거고, 비용만 늘어날 것"이라며, 처방받은 약을 먹고 휴식을 취해도 차도가 없다면 내일 병원에 방문해 진료를 받으라고 권유했다.

오후 7시 40분 119구급대가 취객 3명을 데려왔다.

침대에 실려 온 남성 1명이 쓰러져있었고, 그의 보호자라며 나선 남성 2명의 몸에서는 술 냄새가 진동했다.

한 남성은 "56도짜리 술을 마시다가 이렇게 됐다"면서 웃었다.

의료진이 '이곳은 대학병원이라 비용이 많이 드는데 정말 치료를 받으시겠냐'고 묻자, 다른 남성은 "사랑하는 친구의 건강을 생각해서라도 가봐야겠다"고 답했다.

무조건 돌려보낼 수도 없었다.

단순히 만취한 것으로 보이지만, 도수 높은 알코올 때문에 몸에 이상이 생겼거나 쓰러지는 과정에서 어딘가 충격을 받았다면 검사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응급센터 입구에 있는 환자 분류소에서 한참 고민에 빠진 그때, 다른 환자를 태운 구급차가 병원에 도착했다.

침대 두 개가 들어서자 입구에서는 순식간에 병목 현상으로 인한 교통체증(?)이 발생했다.

의료진과 구급대, 환자와 보호자가 좁은 공간을 이동하느라 진땀을 뺐고, 결국 병원 측에서는 취객 3명을 응급센터 안으로 들이기로 결정했다.

오후 7시 53분 늦은 저녁을 먹기 위해 당직실로 모였다.

이날의 메뉴는 족발. 의료진은 쉴새없이 움직이며 힘을 쏟기 때문에 주로 고열량 고단백질 음식을 먹는다.

그래서인지 당직실 냉장고에는 피자, 삼겹살, 족발 등 각종 배달업체의 자석 쿠폰이 빼곡하게 붙어있다.

배달음식을 꺼내놓자마자 밖이 소란스러워졌다.

레지던트 2년 차가 벌떡 일어나 나갔다가 '별일 아니었다'며 4분 만에 다시 돌아왔다.

앞서 들어온 취객들이 소란을 피운 모양이었다.

"저런 사람들 때문에 건강보험료가 오르는 걸지도 몰라요." 전공의는 "취객도 문제지만 취객을 권역센터로 데려오는 119구급대도 문제"라고 말했다.

방금과 같은 환자의 경우 어쨌든 의식을 잃었기 때문에 KTAS 3급으로 분류, 건강보험 적용대상이 된다는 것이다.

진료비는 기본 검사만 해도 50만 원에 이르지만, 건강보험 적용 시 환자가 부담하는 비용은 최소 10만 원 정도다.

문제는 이런 경우가 드물지 않다는 것이다.

한 전문의는 "제발 환자(실제로 의료진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만 보고 싶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연휴 때처럼 환자가 넘쳐날 때는 응급실에 와도 '응급' 처치를 받을 수 없어요. 상처를 꿰매야 하는 정도의 환자도 다른 중증환자들에 밀려 2~3시간씩 기다려야 합니다.그래서 '이곳은 중증환자가 많아 대기 시간이 길어질 수 있으니 다른 2차 병원으로 가시는 게 나을 수도 있다'고 미리 안내하지만, 다들 기다리겠다고 하죠." 오후 10시 40분 한 남성이 아이를 안고 병원을 찾았다.

아이는 집 안에서 놀다가 넘어지는 바람에 이마가 찢어진 상태였다.

하지만 바로 수술을 할 수는 없었다.

수술 중 아이가 움직이면 더 크게 다칠 수도 있어 수면제를 먹여야 하고, 수면제를 먹이려면 적어도 식후 2시간은 지나야 했다.

구토를 하다가 토사물 때문에 오히려 호흡곤란이 올 수 있기 때문이다.

아이의 봉합수술이 시작된 건 오후 11시 45분께였다.

"아이가 잠들었다"며 처치실로 향한 허 치프는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실과 바늘을 움직였다.

시간은 어느 덧 자정이 지나 다음 날 새벽. 전공의에게 '힘들지 않느냐'고 묻자 "미국 어느 논문은 응급의학과 의사의 심장질환 발병률이 평균보다 12배 높다고 하더라"며 힘없이 웃어 보였다.

"레지던트 1~2년 차에는 '퐁당퐁당'이라고, 24시간을 일하고 24시간을 쉬었다가, 또 24시간을 일하는 당직이 잦다"며 "전문의가 되기 위해서는 논문도 써야 하고 공부도 해야 하는데, 24시간 당직까지 하면 몸이 지칠대로 지친다"고 설명했다.

허 치프는 전날 새벽 4시까지 논문을 썼지만, 바로 24시간 당직에 돌입했다.

레지던트 4년 차가 돼도 피곤하긴 마찬가지다.

오전 0시 45분 충북대병원에서 한 환자가 이송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환자의 상태가 어떠냐고 물으니 "정확한 병명은 직접 봐야 알 수 있을 것 같다"는 답이 돌아왔다.

환자가 도착하기 전에 알 수 있는 정보라고는 '위급'하다는 것뿐이었다.

허 치프는 "전원 준비 도중 위기가 오면 그쪽 병원에서 바이털을 안정시키기 위해 처치를 할 것"이라며 "언제쯤 출발할지 또, 출발해도 언제 도착할지 불확실하다"고 했다.

이어 "갑자기 전원이 취소되는 경우도 있다"며 "우리 쪽에서는 무기한 대기하고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오전 2시 6분 7번 침대에 81세 환자가 도착했다.

앞서 충북대에서 전원을 온다던 그 환자였다.

그는 의식을 완전히 잃지는 않았지만, 점차 흐려지는 듯 '어지럽다'는 말만 작게 반복했다.

맥박은 계속 떨어졌다.

인턴은 보호자에게 앞으로 행할 시술의 효과와 부작용 등을 설명하고 동의서에 사인을 받았다.

"아프다잖아요. 안 아프게 좀 해주세요." 보호자는 환자를 바라보며 걱정스럽게 말했다.

"이건 원래 아픕니다." 전공의는 이같이 말하며 환자의 쇄골하정맥에 관을 찔러넣었다.

"엄마, 자지 말고 일어나. 자면 우리 다시 못 봐. 눈 뜨고 있어." 보호자가 환자의 정신을 겨우 붙들어 놓고 있었다.

의료진은 보호자에게 환자의 의식을 잃게 해선 안 된다고 당부했다.

보호자는 환자에게 계속 말을 걸면서 그가 잠들지 않도록 했다.

7번 환자는 원래 당뇨, 심방세동, 심부전 등을 앓고 있었다고 했다.

다행히 주입한 약물이 맥박을 상승시키는 데 효과가 있었다.

보호자는 놀란 마음을 진정시키며 필자에게 하소연 아닌 하소연을 시작했다.

"원래 시골에서 혼자 지내셨는데, 아픈 걸 계속 숨기셨어요. 가족들은 다 서울에서 사니까, 거기서 이리로 옮겨왔죠. 여기 훌륭한 교수님이 있다고 해서…." 오전 3시 35분 18세 남성이 25번 침대에 누웠다.

그는 심장질환과 우울증, 양극성 장애로 해당 병원에서 외래 진료를 받던 환자였다.

"술을 마셨다고는 하는데 CT가 왜 이렇게 나오는지, 몸 상태가 왜 이렇게 나쁜지 더 알아봐야 할 것 같아요." 의료진은 그가 술 외에도 다른 걸 먹었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과거에도 타이레놀 60알을 삼켜서 응급센터를 찾은 적이 있다는 것이다.

의사는 취재진에게 "일반인이 쉽게 구할 수 있는 의약품도 한꺼번에 많이 먹으면 간에 치명적이다"며 "약국에서 살 수 있다고 절대 가볍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날이 밝았다.

해가 떠올랐고, 취재진이 센터에 도착한 지 24시간이 지났다.

전날 오전 퇴근하며 취재진과 인사를 나눴던 전공의들이 어느덧 다시 출근해 옷을 갈아입고 있었다.

그 사이 7번 환자는 몇 번의 위기를 넘긴 뒤 소생실로 옮겨졌고, 30번 취객은 정신을 되찾고 귀가했다.

의료진은 아침 브리핑을 통해 지난 하루 동안 다녀간 환자들의 특징, 센터에 체류하고 있는 환자들에 대한 처치와 계획 등을 논의했다.

브리핑 이후에는 인계가 이뤄졌다.

환자를 응대하고 처치하느라 밤새 가장 바삐 돌아다녔던 레지던트 2년 차 김현진 전공의는 "(근무가) 다 끝났으니까 말하는 건데, 오늘은 정말 할 만했다"며 웃었다.

그는 "현재 상황을 긍정하는 말을 뱉으면 그 즉시 상황이 나빠지기 때문에 내내 쉬쉬했다"면서 "내일도 와주시면 안 되느냐"고 농담을 건넸다.

근무 때면 유난히 중증 환자들이 몰려 '환타'('환자를 타는 사람'의 줄임말)라고 불리는 허 치프도 "기자님이 저를 이겼다"며 말을 보탰다.

취재진에게 너무도 숨 가빴던 24시간이 의료진에게는 '그나마 괜찮았던 하루'였던 것이다.

짐을 챙겨 당직실을 나서려는데 쉽게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들의 우스갯소리처럼 취재진이 센터에 머무는 것만으로도 업무 과중이 줄어든다면, 종종 센터를 찾아 보탬이 되고 싶을 정도였다.

하지만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야 했다.

센터 밖으로 나오니 눈이 그치고 도로는 촉촉이 젖어있었다.

만 하루 만에 밟는 '응급센터 밖' 땅이었다.

감상에 젖는 것도 잠시, 요란한 사이렌 소리와 함께 구급차가 센터 앞에 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