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을 지연시킬 생각은 전혀 없다."25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 35부(박남천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박병대, 고영한 전 대법관의 첫 공판준비기일에서 박병대 측 변호인 법무법인 태평양 노영보 변호사는 이 말만 재판부에 수 차례 반복했다.

그러면서도 재판부가 박병대 피고인 측 변호인만 아직 공소장 변경 요구와 관련된 서류를 아무것도 제출하지 않았다며 27일까지 내달라고 요구하자 "변호인이 바뀌는 과정에서 시간이 너무 없었다.주말까지 시간을 주시면 4월 8일에 제출하겠다"고 말했다가 "8일에 다시 한번 더 확인한 뒤 9일에 제출하겠다"고 밝혔다.

하루라도 더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애쓰는 모습이었다.

특히 재판부가 1차 공판준비기일의 말미에 "휴정 개념은 아니지만 9분 뒤 2차 공판준비기일을 결정하겠다"고 언급한 뒤 4월 15일로 2차 공판준비기일을 결정하자, 이 때도 박병대 전 대법관의 변호인만 "15일에 재판이 예정돼 있는데 오전 중에 끝날 수 있냐"고 재판부에 질의했다.

양 전 대법원장 변호인은 검찰이 참고인으로 부른 판사들을 사실상 '피의자'처럼 조사했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검찰이 참고인으로 부른 현직 판사들에게 향후 피의자로 전환될 수 있다는 압박을 줘 진술을 받아낸 것이 아니냐는 뜻이다.

그렇다면 당시의 조서는 증거로 사용하는 것이 부적절하다는 논리다.

고영한 전 대법관측 변호인도 "직권남용죄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직권남용 행위의 상대방이 있어야 하고, 상대방이 의무없는 일을 해야 하는 것"인데 "연구 보고서를 올린 심의관들이 그 상대방이 될 수 있는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또 "지시하고 공모했다는 것이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에 대한 지시인지, 사후에 보고받은 보고서를 공모로 평가할 수 있는지 등 법리적인 부분에도 문제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검찰은 "참고인으로 조사받은 사람들이 피의자로 전환될 수 있다고 압박받았는지는 증인신문을 통해 충분히 확인 가능한데, 조서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은 검찰 수사에 흠집 내기, 트집 잡기로 재판을 지연하려는 게 아닌지 의문"이라고 비판했다.

공판준비기일에는 피고인의 출석 의무가 없기 때문에 양 전 대법원장을 비롯한 세 사람은 이날 모두 법정에 출석하지 않고 변호인들만 참석했다.

특히 아직 정식 재판이 시작되기 전인데도 변호인 측과 검찰 간의 기 싸움이 벌어져 향후 재판이 본격화되면 치열한 법정 공방이 전망된다.

더불어 47개에 달하는 혐의를 받고 있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측에서 검찰이 제시한 증거 중 상당 부분을 '부동의'하게 되면 재판부가 관련 증인들을 소환해 신문하는 데에만 수 개월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도 검찰 진술조서 부동의 및 변호인단 전원 사퇴 등으로 재판준비기일에만 4개월이 넘게 걸렸다.

여기에 재판부도 이날 검찰 공소장이 불필요하게 장황한 측면이 있다고 지적하면서, 재판 준비에만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릴 것으로 전망된다.

재판부는 25일 첫 공판준비기일에서 "공소사실부터 명확하게 하려고 한다"면서 이같이 밝혔다.

재판부는 우선 양 전 대법원장과 박 전 대법관이 2014년 전교조 재판에 개입하려 했다는 공소사실과 관련해 "이 부분은 고영한 피고인에 대해선 기소된 것이 없는데도 고영한 피고인이 한 행위의 내용을 기재했다"며 "기소되지 않은 피고인의 행위를 기재한 상태에서 재판하는게 맞을지 의심이 든다"고 지적했다.

또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고용노동부 관련 사건을 보고받았다는 공소장 내용을 예로 들며 "심의관이 보고서를 작성한 시점은 2014년 12월경인데, 박병대 피고인과 임종헌 전 차장이 이 사건을 정부 운영에 대한 협력 사례로 보고 받았다는 건 한참 뒤 아니냐"고 반문했다.

이어 "일단 기소된 부분에 대해선 공소사실이 다 특정됐다고 보는데 직접 관련이 없는 결과와 영향까지 계속해서 기재하고 있다"며 "판례에도 있지만 이런 내용을 공소장에서 읽다보면 법관이 피고인에 대한 부정적인 선입견이나 편견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공소장 변경에 대한 검찰과 피고인측의 의견을 다시 서면으로 제출 받은 뒤 4월 초쯤 정식으로 공소장 변경 요구에 대한 결정을 내리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검찰 측은 재판부에 "4월 11일까지로 일자를 못 박아달라"고 요청했으나, 재판부는 "어차피 박병대 피고인이 안된다고 하면 안되니, 하는데까지 진행하자"면서 "가급적 빨리 제출해 달라"고 피고인측에 요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