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220억 원을 투자했다.내가 현대 아산(금강산 관광산업) 다음으로 제일 많이 투자했던 사람이다.그 외에 부수적으로도 많이 들어갔다."서승우 전 나우 코퍼레이션 대표는 정부가 해도 너무한다는 듯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사업차 평양에 열댓 번 다녀왔다"며 "북한 평양에도 서울처럼 '종로역'이 있다"며 "북한에서 제일 먼저 생긴 호텔인 '고려호텔'도 그곳에 있고, 우리의 종로처럼 번화가"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이미 10여 전 이야기다.

10년이란 세월 동안 그의 삶은 180도 바뀌었다.

그는 어느 때보다 남북 화해 무드가 무르익었던 2000년대 중반 대북사업에 나섰다.

그는 "돈도 목적이었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었다.민간 외교관으로 남북관계 정상화에 기여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당시 개성공단, 금강산관광 사업 등으로 남북관계는 분단 이후 가장 좋은 분위기였다.

정권 교체 후인 2008년 금강산 관광객 피살 사건에 따른 금강산 관광 중단, 2010년 천안함 사태가 일어났다.

이명박 정부가 5.24 조치를 발동해 남북 교역은 전면 중단됐다.

서 전 대표는 그 소용돌이 안에 있었다.

평양에 거금을 투자했지만, 남북관계 경색으로 고스란히 피해를 봤다.

기다렸던 정권 교체 후에도 별다른 지원을 받지 못 했다.

가 지난 6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 사무실에 만난 그는 1세대 대북사업가로서 약 1시간 동안 구구절절 사연을 쏟아냈다.

서 전 대표는 북한에 직접 진출하기 전부터 북측과 무연탄 교역을 했다.

투자를 더 확장하고 싶어 북측에 의사를 비췄더니 긍정적인 반응이 왔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박스공장'이었다.

당시 북한에는 박스공장이 없어 중국에서 수입했다.

2008년 그는 평양 외곽에 2~3만 평쯤 되는 '낙랑구역'이라는 작은 공업단지에 박스공장을 시작하고, 염색공장을 설립했다.

2009년에는 알루미늄 공장까지 사업을 확장했다.

"북한 노동자들은 굉장히 기술이 좋았다."그가 북한에 진출하기 이전에는 친북 성향의 조총련(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계 자본이 많이 들어와 있었다.

하지만 일본이 자국 납치자 문제를 꺼내자 북일관계는 난항을 겪었다.

결국 일본 자본가들은 자국으로 쫓겨났다.

당시 북한 노동자들은 일본 자본가들에게 기술을 전수받았다고 한다.

서 전 대표가 북한에 진출했을 때는 그 노동력으로 알루미늄 공장 사업을 진행했다.

그는 "공장을 감독하는 상주 직원이 있었다.알루미늄 공장은 인력이 50명 정도였고 다 합하면 최소 100명 이상이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사업을 확장하는 찰나였던 2010년 이명박 정부는 남북 교역을 전면 중단하는 5.24조치를 취했다.

이후 서 전 대표의 삶은 완전히 바뀌었다.

평양 알루미늄 공장은 다른 사람에게 넘어갔다.

민·형사상 고발도 당했고, 회수 불가능한 투자금 때문에 신용불량자 신세가 됐다.

그는 "저뿐 아니라 개성공단·금강산 관광산업 입주기업을 제외하고 내륙에 진출한 1146개 국내기업 대부분이 피해자이며 가정이 파괴된 사람까지 있다"고 개탄했다.

북한에 있는 사업 현황도 종종 듣지만 씁쓸함만 더한다.

서 전 대표는 "같이 일했던 조선족 사람들을 통해서 중국 기업들이 현재 우리 사업을 진행한다는 소식을 들었다"며 "돈을 많이 벌었다고 들었다.5.24조치가 없었다면 나도 돈 많이 벌었을 텐데"라고 허탈하게 웃었다.

서 전 대표는 대북사업 투자금을 어느 정도라도 보상받기 위해 '남북경협기업비상대책위원회' 활동도 했다.

200여 개의 피해 기업인들로 구성된 이들은 피해 보상을 위해 2016년 10월부터 광화문 정부청사 앞에서 100일 철야농성과 2017년 2월부터는 260일간 노숙농성을 벌였다.

정권교체 이후 통일부는 남북경협 피해자를 지원하겠다고 약속했지만 기대에는 턱없이 못 미쳤다.

그러던 중 유동호 비대위원장이 57세에 세상을 떠났다.

그 역시 평양에서 호텔, 주유소 사업 등을 했던 대북 사업가였다.

서 전 대표는 "유 위원장이 8개월 동안 정부종합청사 앞에서 추운 날씨에 전기장판 위에서 자동차 매연을 마시면서 시위하더니 작년 젊은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고 안타까워했다.

서 전 대표의 주장과 관련해 통일부 남북경협과 관계자는 와 통화에서 "이번 안은 보상이 아니라 지원"이라며 "보상은 법적 근거가 있어야 하는데 국회 법안 심사과정에서 일부의 문제 제기가 있어 현재는 동력을 잃은 상황"이라고 국회의 탓으로 돌렸다.

이어 "피해자 본인들이 원하는 완전한 지원을 느끼지 못해서 그런 것 같다"며 "통일부는 객관적인 절차를 통해 진행했다"고 강조했다.

지원 기업의 명단 미공개와 탈락 기업의 소명절차가 불충분했다는 지적에는 "지원자 명단은 개인정보보호 차원에서 공개하지 못한다"며 "의사소통 과정에서 충분히 설명했고 이의신청을 받아 재심사를 진행하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반면, 서 전 대표는 통일부 측 답변에 만족할 수 없다고 했다.

한 예로 통일부 측에서 투자금 증거자료로 북한 출입 당시의 세관 기록을 요구했는데, 세관 기록은 5년 이상 기록하지 않기 때문에 그의 기록은 이미 다 사라졌다.

서 전 대표는 "내가 1000만 달러(한화 113억 원) 정도를 나눠서 현찰을 갖고 북한에 갔다"며 "세관 기록은 없더라도 외화를 환전한 은행 기록은 있는데 그것은 인정해 주지 않는다"고 억울함을 토로했다.

이어 "한국은행에 승인도 받고, 사업계획서도 제출해야 하는데, 그것은 인정해 주지 않았다.그렇다면 차라리 나를 불법 외환 유출로 처벌하라"고 덧붙였다.

문재인 정부에는 기대가 컸던 만큼 더 큰 아쉬움을 느낀다.

보수 정권인 이명박·박근혜 정부가 끝나면 달라질 것을 기대했기 때문이다.

서 전 대표는 "그래도 이명박·박근혜 정부 당시에는 보수 정권이니까 피해자 보상을 질질 끌더라도 이해하고 있었다"며 "우리가 얼마나 정권교체가 되길 바랐는데… 그런데 정권이 바뀌었지만 바뀐 게 없다"고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그에 따르면 문재인 대통령도 더불어민주당 당 대표 시절 기업인들에게 집권하게 된다면 도와주겠다고 약속했다.

조명균 통일부 장관도 '남북경협기업비상대책위원회' 농성 천막을 찾아 "최대한 비대위의 의견을 존중하고 받아들여 지원정책을 만들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서 전 대표는 "민주당 국회의원 등도 '이해한다.얼마나 피해가 많으냐'며 해결해 줄 것처럼 공감했다"면서 "하지만, 결국 정치적으로 이용당한 것이다.많은 정치인이 말 뿐이었다"고 깊은 불신을 보였다.

10여년의 세월과 수백억 원을 모두 잃어버린 서 전 대표. 정부의 남북경협 재개 움직임을 반기며 대북사업에 다시 나설까. 서 전 대표는 한반도 정세가 잘 풀리면 다시 남북경협에 도전하겠느냐고 묻자 질색하며 "안 한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북미관계가 개선되고 남북경협이 시작된다고 해도 우리 같이 피해 경험이 있는 사람은 엄두조차 내지 못한다"고 손사래를 쳤다.

앞으로 또 다른 5.24조치가 없으리라고 장담할 수 없기 때문에 정부가 피해보상, 구제방안을 제도적으로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정부와 업체가 함께 부담하는 보험 신설도 제안했다.

무엇보다 정부가 경협 피해자들의 생생한 목소리에 귀기울일 것을 거듭 부탁했다.

그는 "앞으로 남북교류가 정상화됐을 때를 대비해 피해자들과 함께 대책위원회 또는 테스크포스(TF)을 구성, 애로사항 등을 종합적으로 청취해야 한다"며 "공무원들이 책상에 앉아서 뭘 알겠느냐. 이전 남북경협 사업자들의 의견을 청취하고 제도적인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