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체제전환국을 가다 공산당 향한 복잡한 심경 / 레닌 동상, 사회주의 박물관에 옮겨 / 대형 ‘붉은 별’ 함께 전시… 발길 뜸해 / 공산당 독재 시절 역사 담은 조형물 / “무조건 없애는 게 옳은가” 비판 제기 / 노인 세대선 공산당 향수 보이기도불가리아 수도 소피아의 중심지에 우뚝 서 있는 소피아 여신상은 체제 전환을 이룬 불가리아의 상징적 조형물이다.

원래 소피아 여신상이 놓여 있던 자리에는 블라디미르 레닌 동상이 있었다.

옛 공산당 본부 청사를 정면으로 바라보는 위치에 서 있던 대형 레닌 동상은 공산주의가 붕괴한 이후 철거됐다.

황금빛 몸에 검은 옷을 두른 소피아 여신상은 오른손엔 월계관, 왼팔 위에는 부엉이가 앉아 있는 모습인데, 주민들 사이에선 아직도 이 동상이 논란거리라고 한다.

소피아대 출신인 한 현지 대학생은 “1990년대 초 레닌 동상이 철거된 이후 저 여신상이 들어섰는데 아직도 저 여신상이 무슨 의미인지 대부분의 사람이 잘 모른다”며 “소피아는 매우 종교적인 도시인데 여신상의 옷차림이 정숙하지 않아 종교계에서 소피아 여신상이 도심의 ‘흉물’이라고 지적하는 목소리는 최근까지도 계속되고 있다”고 말했다.

철거된 레닌 동상과 함께 옛 공산당 본부 건물 꼭대기를 장식했던 공산당의 상징인 대형 붉은 별도 같은 운명을 맞이했다.

두 조형물은 현재 소피아 시내 중심지에서 약간 동떨어진 곳에 자리 잡은 사회주의 예술 박물관에 전시돼 있다.

레닌 동상은 불가리아의 과거 공산당 지도자를 비롯해 공산당의 주요 인물을 형상화한 동상과 함께 박물관 정원에 놓여 있고 붉은 별 조형물은 박물관 정문 입구에 붙어 있다.

자세히 보지 않으면 붉은 별의 존재를 그냥 지나치기 쉬울 정도로 눈에 띄지 않는다.

박물관 내부 과거 공산주의 체제 시절 영상을 상영하는 작은 영상관에서는 공산당 집권 시절의 선전·선동활동으로 이뤄진 시가행진 및 공산당 간부의 주요 연설 장면을 내보내고 있었다.

당·정·군 주요 간부들이 주석단에 도열해 열병식을 지켜보는 모습이나 소년·소녀들의 집단행진 장면 등은 놀랍도록 북한의 체제선동 방식과 흡사하다.

영상관 입구에서 관람객의 입장료를 받는 계산대에는 레닌과 이오시프 스탈린의 얼굴이 새겨진 엽서와 포스터 등이 단돈 1∼2유로에 관광상품으로 판매되고 있었지만 사는 이들은 드물다고 한다.

심드렁한 표정으로 입장료를 받는 박물관 직원도 판매에 별다른 열의를 보이지 않는다.

다니엘 보베바 전 불가리아 부총리는 “토도르 지브코프 공산당 서기가 35년의 장기독재 권력을 내려놓은 날 너무나 기쁜 나머지 샴페인을 들고 거리로 뛰쳐나왔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며 “당시 100만명 정도 되는 엄청난 인파가 곳곳으로 쏟아져 나왔는데 그때 어디서 그런 에너지가 분출됐는지 지금 생각해도 참 대단했던 것 같다”고 회고했다.

지도자가 처형된 인접국 루마니아와 달리 불가리아의 공산당 붕괴는 비교적 평화적으로 이뤄졌다.

지브코프 서기장 퇴임 이후 공산당을 상징하는 조형물이 철거되는 등의 외형적 변화는 속도감 있게 이뤄졌지만 최근 들어서는 이에 대한 비판적 시각도 고개를 들고 있다.

인적 청산은 소극적이었으면서 어찌 됐든 불가리아의 역사를 상징하는 건물과 조형물을 모조리 없애는 것이 바람직하냐는 것이다.

공산주의 시절 이뤄진 일을 기억하자는 의미에 공감하는 이들은 웹사이트(lostbulgaria.com)를 개설해 엄혹했던 시기의 사진 자료를 모으고 있다.

시대별로 게재된 사진 자료를 보면 빵을 사기 위해 긴 줄을 늘어서 있는 주민 모습을 비롯한 주요 상징물 철거 당시 모습 등이 생생하게 담겨 있다.

소피아의 공무원으로 일하다 6년째 역사 전문 해설가로 활동 중인 마틴은 “공산주의 시절 있었던 일에 대해 누군가는 알려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지금은 정부에서 공산주의 시절 이뤄진 여러 범죄를 공산주의 범죄로 공식 규정했기 때문에 학교에서도 이제 가르치게 될 예정이지만 일단 과거 있었던 일 자체는 있는 그대로 우리의 역사이니 공산당에 대한 가치평가는 배제하더라도 역사는 있는 그대로 알려주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불가리아 국민은 여전히 공산당에 대해 복잡한 심경을 지니고 있다는 게 현지 소피아에서 만난 이들의 설명이었다.

나이 든 세대들은 공산당 시절을 그리워하는 이들도 있고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이들은 공산당 독재 시절에 대한 향수가 강하다는 얘기다.

하지만 빵과 우유를 사기 위해 새벽 4시부터 줄을 서야 했고 아파트를 구하려면 10∼20년을 기다려야 했던 끔찍한 기억을 먼저 떠올리는 이들이 대다수다.

보베바 부총리는 “자동차를 구하려고 해도 최소 10년은 기다려야 했던 시절이었다”고 말했다.

마틴은 “2년 전에 돌아가신 우리 할아버지는 숨을 거두기 직전까지도 방 안에 스탈린 사진을 걸어두고 있었다”며 “어머니는 소피아에서 약대를 졸업한 수재였지만 공산당의 강제이주 방침에 따라 터키와 접경한 변방으로 삶의 본거지를 옮겨야 했기에 우리 가족들이 모이면 공산당 욕을 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간 늘 크고 작은 언쟁이 오가는 게 일이었다”고 했다.

소피아=글·사진 김민서 기자 spice7@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