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접대, 경찰 고위층 유착 의혹 등이 담긴 '판도라의 상자' 가수 승리 씨의 카카오톡 단체방 대화 내용을 확보한 방정현 변호사는 경찰이 아닌 국민권익위원회에 제보했다.

제대로 수사할지 의심스러웠기 때문이다.

국민권익위는 검찰에 넘겼지만 검경수사권 조정에 앞서 '경찰총장' 등 경찰 고위급 연루설이 나오는 이 사건을 맡기도 부담스러워 일단 경찰 수사를 지휘하기로 했다.

검찰 과거사위원회가 조사 중인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별장 성접대' 의혹은 검찰과 경찰 모두 초기 수사가 부실했다는 의심을 받는다.

재수사한다면 어느 쪽이 맡더라도 신뢰를 얻기 힘들다.

역시 재수사 여론이 거센 '고 장자연 리스트' 사건도 검경이 나선 초기 수사에 외압 흔적이 많다.

세 사건은 부실수사 과정에 특권층의 비호가 의심된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같은 특권층 대형범죄 수사의 해법으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떠오른다.

대통령, 국무총리, 국회의원, 대법원장·헌법재판소장 등 고위공직자와 직계가족의 범죄 수사를 맡는 독립기구다.

광역자치단체장, 고위공무원, 판·검사와 경찰고위직, 장성급 군인도 수사 대상이다.

권력의 입김에 자유롭지 못 하면서도 기소독점권에 수사권까지 가진 검찰의 비대한 권한을 견제하기 위해 검경수사권 조정과 함께 추진돼왔다.

공수처 설치를 국정과제로 못박은 문재인 정부는 김학의 전 차관 사건 등에 대한 국민적 공분에 힘입어 한층 가속 페달을 밟는다.

박상기 법무부 장관은 19일 기자회견문에서 "공수처가 설치돼 장자연 리스트 사건, 김학의 전 법무부차관 사건과 같은 일들의 진실이 제때에 밝혀질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여론도 공수처에 손을 들어준다.

지난 1월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가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공수처 설치에 찬성하는 응답자가 76.9%(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4.4%p)에 달했다.

박근혜 정부 때인 2016년 7월말 조사(69%), 2017년 9월말 조사(69%)보다 찬성이 약 8%p 증가했다.

김학의, 고 장자연, 버닝썬 사건이 공론화된 이후에는 더 상승했을 것으로 보인다.

1996년부터 논의가 시작된 공수처는 2002년 대선 당시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 역시 공약으로 제시했고 2017년 대선에서는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와 유승민 바른정당 후보도 공약했을 만큼 진영을 넘어선 공감대가 있다.

번번이 검찰이 조직적으로 반대했지만 문무일 총장 취임 후에는 "국회에서 도입하면 수용하겠다"는 입장으로 정리했다.

다만 20대 국회에 5건이 제출된 공수처설치법은 국회에서 가로막혔다.

공수처 설치를 적극 반대하는 자유한국당은 물러설 기미가 없다.

전희경 한국당 대변인은 20일 YTN 라디오 ‘이동형의 뉴스 정면승부’에 나와 "공수처는 어디에서도 터치 받지 않는 무소불위 조직이며 검찰 위의 옥상옥"이라며 "공수처설치법을 결단코 막겠다"고 말했다.

자유한국당을 뺀 여야 4당은 이 법을 선거법개정안, 검경수사권조정 관련법과 함께 신속처리 안건(패스트트랙)으로 올리기 위해 논의 중이지만 난항 을 겪는다.

특히 키를 쥔 바른미래당은 당내 내홍 끝에 △기소권(검찰)-수사권(공수처) 분리 △공수처장 인선에 추천위 3/5 동의 등이 수용되지 않으면 패스트트랙 상정 무산을 선언하겠다고 배수진을 쳤다.

2004년 참여정부 때 발의된 공직자비리수사처설치법안에는 현재 바른미래당의 입장처럼 기소권과 수사권이 분리됐다.

다만 당시는 역대 대통령 자녀 비리 문제가 계기가 된 고위층 부패 수사기구 취지가 강했고 이번에 발의된 공수처법은 검찰개혁의 의미가 더해졌다는 점에서 다르다.

이명박, 박근혜 정부를 거치면서 '스폰서 검사', '벤츠 검사' 사건을 비롯해 현직 검사장이 최초 구속된 진경준 사건, 국정농단 사태 등으로 검찰에 대한 신뢰가 급락했다는 배경이 있다.

김인회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현 공수처법은 검찰개혁에 대한 시대적 요구가 반영된 것으로 검찰에 기소권을 주고 수사권을 갖는 데 그친다면 공수처의 역할이 반감될 우려가 있다"며 "공수처장 임명권도 대통령의 권한 견제를 넘어 본질적으로 침해하는 수준에 이르면 안 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