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비가 내렸다.

가물었던 땅을 적시고 꽃을 피우기만을 기다렸던 초목들에는 그야말로 '단비'이다.

또, 하늘을 덮었던 미세먼지를 없애주니 참 고마운 봄비가 아닐 수 없다.

비 그치면 봄이 왔다 느끼고 싶겠지만, 반짝 추위가 찾아온단다.

돌아보면 매해 봄이 오는 길목에선 꼭 반짝 추위가 시샘을 부린다.

따뜻한 봄볕은 좀 더 지난 후에나 쬘 수 있을 것 같다.

봄비 내리는 날 늦은 오후 이철수의 '있는 그대로 가 아름답습니다'라는 책을 꺼내 읽었다.

책장을 넘기다 보니 봄이 오는 요즘과 딱 들어맞는 글이 눈에 들어왔다.

겨우내 추위와 미세먼지로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낸 터라 제법 비 같은 비가 내리는 소리가 듣기 좋아서였나 보다.

'봄이건 새순이건 꽃이건 올 것은 오겠지요? 자연은 때를 놓치는 법이 없고 사람의 마음은 제멋대로 춤을 춥니다.

다행스러운 건 몸이 자연에 속한 것을 스스로 알아서, 나고 자라서 늙어가는 걸음을 늦추거나 바꾸지 않는 거지요.'이 글귀가 눈에 들어온 건 봄비 내리는 날이기도 하지만, 20일 오후 민의의 전당 국회 본회의장에서 대정부 질문을 보며 씁쓸한 뒷맛이 남아서이기도 한 것 같다.

두 달의 공회전을 끝내고 3월, 어렵게 문을 스스로 여는 국회를 보며 '계절 변하니 국회도 봄맞이 하는구나'라는 착각을 해보았다.

보다시피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여야는 버닝썬과 청와대 민정라인,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과 황교안 대표 연루 의혹, 선거법 개정 등을 두고 매일 싸움박질 중이다.

그나마 이날 무엇들 하고 있나 보니 딴짓하는 의원, 숙면하는 의원, 쓴소리를 참지 못해 한 마디 토해내고 퇴장하는 의원 등등 참 각양각색이다.

늘 보던 모습 그대로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론 곳곳의 빈자리를 보고 있자니 '그래 차라리 딴짓을 해도 나와서 하고, 고성을 지르는 사람이 낫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이런 생각에 미치니 자조가 나온다.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모를 의원들이다.

어쩜 이리도 변하지 않을까. 불변하겠다는 태도에 한숨이 나올 수밖에 없는 국회다.

염치없게도 세비는 세비대로 꼬박꼬박 잘도 받아간다.

본회의 참여율에 따라 세비를 차등 지급 해야 하는 거 아닌가 싶다.

보통 국민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새벽, 저녁 가리지 않고 일한다.

그래도 국회의원들보다 적은 돈을 받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이 얼마나 불공평한 일인가. 반가운 봄비 내리는 날 국민은 안중에도 없는 국회의원들의 모습에 흥이 깨지고 말았다.

'달라졌겠지'라는 생각은 역시 '일장춘몽(一場春夢)'이다.

봄이 왔지만 봄 같지 않다는 '춘래불사춘'은 꼭 국회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닌가. 겨우내 까칠한 나뭇가지 같은 설전만 주고받는 정치권에 봄을 기대하는 건 실현 불가능한 상상인가 보다.

정치권의 모습을 보고 실망한 우리, 서로에게 '가시보다는 새순 끝처럼 보드라운 마음결이 좋지요, 봄날 행복을 빕니다'라는 이철수의 글로나마 위로를 받아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