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현 원장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개념, 더 넓어져야" /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100가구 신체·정신·사회경제·심리적 피해 심층조사 / 피해 보상 넘어 사회적 치유 필요 / '가습기 살균제 증후군' 개념 도입해야 “사회적 참사의 경우 그 피해자를 지금보다 훨씬 넓게 정의해야 한다고 봐요.” 최근 가습기 살균제 참사 피해가정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한 김동현 한림대 보건과학대학원 원장은 지난 20일 기자와 만나 진행한 인터뷰에서 “우리 사회가 ‘피해자’ 개념을 재정의할 필요가 있다”며 이렇게 말했다.

의학적 기준을 세운 뒤 그에 부합하는 피해자를 선별하고 지원하는 식이 아니라, 어느 정도 피해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되는 집단을 모두 피해자로 보고 우선 지원하는 형태가 돼야 한다는 것이다.

의학적 기준에 대한 합의를 도출하는 일이나 그에 따라 피해자를 선별하는 일 모두 매우 지난한 시간을 요하는 탓에, 그 사이 정부 지원을 받지 못한 참사 당사자의 피해 정도가 심화할 수밖에 없다는 게 김 원장의 설명이었다.

“피해자를 넓게 잡으면 정부 예산이 방만하게 쓰일 수 있단 우려가 나올 수 있겠죠. 그러나 그로 인한 사회적 손실은, 피해자 기준이 마련되는 과정 중 악화하는 실제 피해자의 고통 정도와 그렇게 마련된 기준에 부합하지 못해 실제 피해자가 정당한 지원을 못받는 경우에 비하면 결코 크다고 할 수 없어요.” 김 원장은 사회적참사 특별조사위원회 의뢰를 받아 지난해 말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100가구의 신체·정신·사회경제·심리적 피해에 대한 심층조사를 진행했다.

그는 이 연구에서 가습기 살균제를 둘러싼 여러 형태의 지연을 확인했다고 했다.

“문제가 된 가습기살균제가 국내서 개발된 건 1994년이예요. 관련 환자가 집중 발생한 건 2006년이었어요. 제품 개발 이후 피해를 인지하는 데만 10년 가까이가 걸린 거죠. 그나마도 당시엔 원인불명의 폐질환일뿐이었어요. 질병관리본부가 본격적으로 원인 규명에 착수한 건, 또 다시 5년이 지난 2011년이었어요. 제품을 판매한 업체들이 책임을 인정하고 피해보상을 약속한 건 또 5년이 지난 2016년이예요. ” 김 원장은 “여전히 가습기 살균제 참사를 둘러싼 과정은 지연되고 있는 현실”이라며 “가해 기업에 대한 처벌이나 피해자에 대한 최종 보상이 늦어지면서 2차피해가 발생하고 사회적 울분이 쌓이는 중”이라고 지적했다.

“이번에 연구를 수행하면서 어려움으로 다가온 게 바로 피해자들의 ‘냉소’였어요. 분명 그들을 돕기 위한 목적의 조사인데도, 피해자분들은 ‘이제 와서 또 조사냐’, ‘뭐 조사를 더 할 게 있냐’ 등 사회나 정부에 대해 불신하는 모습을 보였어요. 문제가 방치되고 해결이 지연된 시간이 워낙 오래다보니 ‘어차피 안되는 거 잊고 산다’는 분들도 많았어요.” 이런 탓에, 애초 연구팀이 대상으로 삼은 건 200가구였으나 응답률이 50%에 그쳐 결과적으로 100가구에 대한 조사만 이뤄졌다.

김 원장은 지금이라도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범위를 넓히는 차원에서 ‘가습기 살균제 증후군’ 개념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그는 “이번 연구에서 단순 폐 질환뿐 아니라 비강 질환, 안과 질환, 간 질환, 우울증 등 여러 증상이 보고됐다”며 “이런 다양한 신체 질환을 포괄하고 적정한 지원이 이뤄지도록 지금이라도 증후군이라 명명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지금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로 인정 받은 사람도 자기가 겪는 증상에 따라 호흡기 내과에 갔다가 정신과에 가는 식으로 병원이 각 증상마다 개별 대응하는 형태예요. 이런 상황에선 피해자분들이 어떤 배경을 가지고 있는 지에 대한 고려가 이뤄질 수 없어요. 그러니 다학제 간 협력을 거쳐 이들에 대한 통합적 치료·연구를 할 수 있는 센터가 필요하다고 봅니다.그래야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분들에 대한 장기 모니터링도 이어질 수 있을 거예요.” 김승환 기자 hwan@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