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세계] 일제강점기 국내 강제징병 피해자 김영환 할아버지 전북 군산시에 사는 김영환(96) 할아버지는 일제강점기 국내 강제징병 피해자다.

1945년 3월, 일본군 손에 붙잡혀 해방될 때까지 5개월여 경기도 시흥시의 한 부대에서 군 생활을 했다.

식사 시간에 주어진 건 보리와 콩이 섞인 ‘주먹밥’에 다꽝으로 불리는 ‘단무지’가 전부였다.

영양실조에 걸리지 않으면 다행이었다.

김 할아버지는 1965년 체결된 ‘대한민국과 일본국간의 재산 및 청구권에 관한 문제의 해결과 경제협력에 관한 협정(한·일 청구권 협정)’에 따라 ‘국내 강제동원 피해자는 보상금을 받지 않는다’는 사실에 격분, 지난해 외교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한·일 청구권 협정의 한국 측 서명인은 이동원(2006년 별세) 당시 외무부(現 외교부) 장관이다.

협정의 피해 보상과 국회가 2010년 제정한 ‘대일 항쟁기 강제동원 피해조사 및 국외 강제동원 희생자 등 지원에 관한 특별법’ 피해 진상 규명 대상에서 국내 강제동원 피해자는 제외됐다.

할아버지는 최근 세계일보와 통화에서 분을 감추지 못했다.

◆“강제동원 피해자를 왜 차별하느냔 말이여”… 할아버지는 “군에 끌려갔을 때 일본의 태평양 전쟁이 한창이었다”며 “미군 폭격 때문에 자기들 도망가려고 파는 방공호 공사에 동원됐다”고 말했다.

줘도 안 먹을 음식에 인간 취급도 못 받으면서 수개월 방공호까지 파느라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고. “그때만 생각하면 아직도 분통이 터지는데 나라에서는 아무것도 해주지 않는다는 게 말이 되느냐.” 할아버지는 할 말이 많은 듯했다.

“당시는 우리가 힘이 없으니 쥐락펴락하는 일본인 말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그런데 국내에서 강제 동원된 사람들은 나라가 아무런 보상을 안 해준다.일본군에 끌려가 그리도 모질게 당했는데 정부가 어째서 국내외 강제 동원 피해자를 구분하느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그가 “엄연한 직무유기”라며 소송을 제기한 배경이다.

“군에 끌려가고 강제 노동에 시달리면서 수없이 많은 사람이 죽었는데, 법치국가가 피해자를 차별하다니 말이 되느냐. 참말로 잘못한 것이어서 외교부를 상대로 소송을 걸었다.” ◆“이기든 지든 끝까지 가야제”…두 번째 통화 서울행정법원에서 첫 재판을 하루 앞둔 지난 20일 할아버지는 외교부 측 입장을 들었다.

외교부는 답변서에서 △원고의보상금 지급 청구는 행정소송의 대상이 아니며 △피고(외교부)는 보상금의 지급을 결정할 권한을 가진 행정청이 아니라면서 △원고의 사건 청구는 행정소송으로 구할 수 있는 성격이 아니고 △보조금 지급 거부처분에 대한 취소소송의 성격으로 해석한다더라도 외교부는 적법한 처분권한을 가진 행정청이 아니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부적법한 소송으로 각하하여 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법원은 5월2일로 예정된 두 번째 심리기일 전까지 외교부 답변에 이의를 제기하려면 국선변호사 도움을 받는 게 좋다고 할아버지에게 설명했다.

이의 제기 내용을 서면으로 제출하라는 데 혼자서는 어려울 테니 변호사를 선임하라는 의미다.

김 할아버지는 “요즘 어떤 변호사가 나 같은 늙은이를 도와주겠느냐”며 “법원 지원금(100만원)에 돈을 더 얹어야 하는데, 내가 돈이 어디 있나”라고 한탄했다.

이어 “군산에 대한법률구조공단이 있으니 거기에 도움을 요청해볼 생각”이라며 “이길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끝까지 해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김동환 기자 kimcharr@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