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첫 공판준비기일 앞두고 8년 전 대법원장 청문회 내용 '눈길' / "재야경험 없는 게 양승태 유일 약점" 경고, 8년 뒤 결국 현실화(?) / '검찰이 無에서 有 창조했다' 종전 입장 이어가며 혐의 부인할 듯 “후보자의 유일한 단점은 법원 내부에만 있었다는 것입니다.순혈주의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직권남용 등 혐의로 구속 기소돼 25일 첫 재판을 앞둔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8년 전 공직후보자 시절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들은 ‘경고’다.

시간을 거꾸로 되돌릴 수는 없겠으나 양 전 대법원장이 이 경고를 무겁게 받아들였다면 사법부 수장 출신으로 처음 재판에 넘겨지는 비극은 피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법원 내부 시각 벗어나라"는 경고 새겼더라면… 24일 국회 등에 따르면 2011년 8월 이명박(MB) 당시 대통령에 의해 대법원장 후보자로 지명된 양 전 대법원장 청문회가 그해 9월 6, 7일 이틀간 국회에서 열렸다.

당시 재야법조계를 대표해 강희철 대한변호사협회 부협회장이 증인으로 출석했다.

강 변호사는 양 전 대법원장이 사법부 수장으로 적임자라고 평가하면서도 한 가지 ‘단점’을 콕 집어 지적했다.

변호사 활동 등 재야 경험이 전혀 없다는 것이었다.

“후보자의 유일한 단점은 법원 내부에만 있었다는 것입니다.법원 밖에서 보는 세상은 너무 다릅니다.후보자는 열린 자세로 순혈주의에서 벗어나 법조단체 등 의견을 잘 수렴해 주시길 바랍니다.” (강 변호사) 사실 전임 대법원장들과 비교하면 양 전 대법원장이나 김명수 현 대법원장은 재야 경험이 전무하다.

최종영 전 대법원장(1999∼2005년 재임)의 경우 1998년 대법관 임기만료로 물러난 뒤 이듬해 김대중(DJ) 당시 대통령에 의해 대법원장 후보자로 지명될까지 1년가량 변호사로 활동했다.

이용훈 전 대법원장(2005∼2011년 재임)은 2000년 대법관 임기만료로 물러난 뒤 2005년 노무현 당시 대통령에 의해 대법원장 후보자로 지명될 때까지 무려 5년간 변호사로 활동했다.

이때 벌어들인 거액의 수임료 때문에 나중에 대법원장 청문회에서 야당 의원들로부터 ‘전관예우 아니냐’는 질타를 듣기도 했다.

◆노인성 질환 치료 위해 병원에 1억원 기부하기도 실제로 양 전 대법원장은 청문회에서 한 국회의원으로부터 이런 질문을 받았다.

“이전의 두 분 대법원장 말씀을 들어보면 변호사로 활동을 해보니 법원 내에 있을 때에는 알기 힘들었던 법원의 문제점이 보였다고 합니다.후보자는 계속 법원에 있어 귀한 경험을 놓쳤다고 생각하지 않는지요?” 양 전 대법원장은 2011년 2월 대법관 임기만료로 물러났다.

그리고 불과 6개월 만인 같은 해 8월 MB로부터 “대법원장을 맡아 달라”는 부탁을 들었다.

양 전 대법원장은 그 반년 동안 변호사로 활동하지 않고 평소 좋아하는 등산 등으로 소일했다.

김명수 현 대법원장이 역시 2017년 춘천지법원장에서 대법원장으로 직행한 케이스다.

의원의 날카로운 지적에 양 전 대법원장은 “전임 대법원장님들 말씀에 동의한다”며 “그런(재야 변호사의) 경험을 갖지 못해 아쉽다”고 답했다.

그러나 곧바로 “다만 본인은 대법원장이 될 것이라 생각하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굳이 탓하자면 재야 변호사 경험이 없는 자신을 대법원장 후보로 택한 MB가 책임질 일 아니냐는 투로 들린다.

당시 청문회에선 양 전 대법원장의 사별한 옛 부인이 남편 명의로 경기 안성의 땅을 사면서 주소를 허위로 기재한 점을 놓고 야당 의원들이 공세가 거셌다.

하지만 양 전 대법원장이 대법관 시절인 2007년 모친상을 당한 직후 집(경기 성남)에서 가까운 분당서울대병원에 “노인성 질병 치료에 써달라”며 1억원을 기부한 미담이 공개된 뒤 ‘사법부 수장으로서 별다른 흠결이 없다’는 여론이 형성되며 우호적 분위기 속에 국회 임명동의안이 가결됐다.

◆양승태 "검찰 공소장, 조물주처럼 無에서 有 창조" 양 전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의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사건을 심리 중인 서울중앙지법 형사35부(부장판사 박남천)는 25일 오전 10시 양 전 대법원장의 첫 공판준비기일을 연다.

공모자로 기소된 박병대, 고영한 전 대법관의 재판 절차도 함께 진행된다.

양 전 대법원장을 비롯한 전직 대법관들은 검찰 공소사실을 모두 부인할 것으로 보인다.

양 전 대법원장은 지난달 보석을 신청한 뒤 열린 심문 과정에서 “검찰이 흡사 조물주가 무에서 유를 창조하듯 공소장을 만들어 냈다”며 “이번 사태는 법원에 대한 검찰의 이해력 부족에서 비롯됐다”고 주장한 바 있다.

박, 고 두 전직 대법관 측도 “법원행정처장으로서 사법행정상 허용되는 테두리 안에서 지시를 내리고 직무를 수행했을 뿐”이라며 “검찰이 적용한 직권남용죄는 성립하지 않는다”고 방어막을 펼 것으로 보인다.

특히 고 전 대법관 변호인은 지난 22일 재판부에 “검찰의 공소사실이 공소장 일본주의(一本主義)에 위배된다”는 취지의 의견서를 냈다.

공소장 일본주의란 형사소송법에 규정된 원칙으로, 검사가 공소장을 작성할 때 혐의 내용만 간략히 기재함으로써 판사로 하여금 ‘유죄’의 예단을 갖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번에 양 전 대법원장과 함께 기소된 전현직 법관들은 “검찰이 공소장에 공소사실과 직접 관련이 없는 ‘부연설명’만 잔뜩 써놨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