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빌려 자본금 맞추고 고객 납입금으로 연명… 가입자만 ‘봉’ #. A씨는 자식들의 짐을 덜어주기 위해 2013년 상조에 가입했다.

쌈짓돈을 모아 가입 후 70개월 동안 한 차례도 빠짐없이 월 3만9000원씩, 모두 273만원을 상조업체에 납부했다.

지난 1월, 통장을 확인한 A씨는 지난해 11월부터 납입금이 인출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상조업체에 전화를 걸고서야 상조업체가 이미 폐업했고, 업체명도 바뀌었다는 사실을 전해 듣고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상담원의 안내에 따라 피해보상금을 찾기 위해 은행을 찾았지만 조회 결과 해당 상조업체는 은행에 예치금을 넣지 않아 피해보상금을 받을 수 없었다.

#. B씨는 2007년 ㄱ상조업체의 상조상품에 가입해 월 3만원씩 41개월을 납부했다.

ㄱ업체는 B씨가 모르는 사이 부도처리를 했고 ㄴ업체에 인수됐다.

ㄴ업체는 회원동의도 없이 ㄱ업체의 회원을 인수하고, 대금도 인출했다.

B씨는 뒤늦게야 이 사실을 알고 ㄴ업체에 전화를 걸었다.

‘업체가 바뀌었을 뿐 문제가 없으니 상조 계약을 유지해 만기를 채우는 것이 좋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B씨는 남아있는 19회분을 마저 납부했다.

하지만 지난해 B씨가 해약신청을 위해 ㄴ업체를 찾았을 때는 이미 업체가 ‘등록취소’된 이후였다.

해약환급금은 물론 선수금 예치도 돼 있지 않아 소비자피해보상금도 받지 못하는 상황이다.

이달 15개 ‘부실’ 상조업체가 등록 말소된다.

정부가 2016년 할부거래법 개정을 통해 상조업체 자본금 기준을 3억원에서 15억원으로 상향 조정한 이후 증액 시한인 지난 1월까지 자본금을 충족하지 못한 업체가 대상이다.

자본금을 융통해 업체를 등록하고 돈을 빼내는 ‘가장납입’ 등을 통해 영업을 시작한 뒤 회원들의 납입금으로 근근이 영업을 이어가며 소비자 피해를 키운다는 지적에 따른 조치다.

이번에 문을 닫는 15개 상조업체는 대부분 소형 업체이지만 가입자 수는 7800여명에 달하고, 이들이 납입한 선수금도 53억원을 넘어선다.

사실상 피해액이 53억원에 달하는 셈이다.

공정거래위원회의 ‘내상조 그대로’ 서비스 등 폐업한 상조업체 소비자가 다른 업체를 통해 상조상품을 계속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대체서비스를 이용할 경우 피해 금액의 50%는 보전받을 수 있지만 나머지 금액에 대해서는 피해가 불가피하다.

◆상조업체는 5년 사이 ‘절반’ 줄었지만, 가입자는 540만명 24일 공정위에 따르면 지난해 9월 기준 우리나라 등록 상조업체는 146개에 달한다.

상조업체가 ‘제대로’ 관리되기 시작한 2013년 293개에서 절반으로 줄었다.

146개 업체 중 정부에 자료를 제출하지 않은 업체 5곳을 제외한 141개 상조업체의 총가입자 수는 539만명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이들 업체가 현재까지 소비자들로부터 받은 선수금은 5조800억원이다.

가입자 수는 2013년 368만명에서 지난해 539만명으로 빠르게 증가하고 있고, 2013년 3조779억원이던 선수금도 지난해 처음으로 5조원을 넘겼다.

상조업체 수와 가입자 수, 선수금 규모는 대형업체 위주로 증가했다.

정부가 관리 감독을 강화하며 부실 업체가 정리됐고, 대형업체들이 이들 부실 업체의 소비자들을 유치하는 등 지속적으로 신규고객을 유입한 결과다.

우후죽순처럼 생겨났던 상조업체들이 회원을 인수하거나 통합하는 식의 일종의 기업결합(M&A)을 통해 몸집을 키운 것도 사실이다.

정부가 소비자 피해 보호장치 등을 마련하기 이전에는 M&A 과정에서 회원정보만 넘겨받고, 선수금을 보전하지 않거나 해약환급금을 돌려주지 않는 피해가 줄을 잇기도 했다.

상조업체 수가 줄어드는 과정은 사실상 ‘불량 업체’가 정리되고 있는 과정인 셈이다.

정부가 상조업체의 관리 감독을 강화하고 있지만 상조업체 부실 운영에 따른 소비자 피해 우려는 여전한 상황이다.

◆15억원 충족 회사도 여전히 우려…변형 상조 등도 우려 공정위는 상반기 중 15억원을 충족한 뒤 돈을 빼는 가장납입 여부에 대해 조사할 계획이다.

자본금 규모 15억원을 맞추기 위해 계좌에 잠시 돈을 입금해 자본금을 늘리고 바로 인출하거나, 서류 작업만으로 자본금 요건을 맞춘 경우도 적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15억원을 맞추지 못한 업체 중 무등록으로 영업을 지속하는 업체에 대한 조사도 진행된다.

공정위에 따르면 지난해 3월만 해도 등록된 상조업체 154개 가운데 자본금이 15억원 미만인 업체가 131개에 달했다.

지난 1월 조사까지만 해도 자본금 미충족 업체가 43개에 달했다.

자본금을 급하게 채워넣었다는 추정이 가능한 대목이다.

이달 초 폐업한 한 중견 상조업체의 경우도 서류작업으로만 자본금 요건을 맞춘 것으로 알려졌다.

24일 현재 이 상조업체의 홈페이지에는 ‘개정된 할부거래법률에 맞춰 자본금을 3억원에서 15억원으로 증액했음을 알려드린다’는 공지 팝업창이 떠 있다.

공정위에 따르면 상조업체가 부도·폐업하는 경우 보전기관으로부터 소비자가 실제로 보상받을 수 있는 보전금액 비율 50%를 맞추지 못한 회사도 지난해 9월 기준 16개에 달한다.

이들 업체가 거둬들인 선수금만 200억원이다.

이들 업체의 보전금액은 72억원으로 보전비율은 36%에 불과했다.

최근 변형된 상조업체에 대한 주의도 요구된다.

이번에 15억원의 자본금을 맞추지 못한 상조업체의 경우 ‘후불식 상조’라는 형태로 영업 전환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주로 장례식장을 운영하는 업체들이나 장례지도사 등이 잠재적 회원 유치를 위해 가입만 받은 뒤 장례를 치르고 돈을 받는 형태로 운영한다는 계산이다.

이 과정에서도 추후 정산 때 추가금을 받거나, 사전에 고가의 수의나 관을 판매하는 경우가 우려된다.

최근 일부 업체들은 카드 할인 등을 통한 실제 납입금 ‘0원’을 강조하며 고객 유치에 열을 올리고 있기도 하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지난 6일 공정위 업무보고에서 “상조업체가 우리 국민들의 생활 속에 깊숙이 들어와 있는 서비스인 만큼 50%의 어떤 선수금 예치를 포함한 지급능력, 환급능력 등을 강화할 수 있는 방향으로 제도 개선을 적극적으로 추진할 계획을 갖고 있고, 이미 국회와 협의 중”이라고 밝혔다.

◆돈만 있으면 등록 ‘OK’ … 무차별 난립에 피해 속출 소비자들이 불량 상조업체들로 피해를 본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1980년대 초 첫 상조업체 등장 이후 전체 상조업체 가입자 수가 500만명을 넘어서는 등 시장 규모가 매년 빠르게 확장하고 있지만 제대로 관리·감독이 이뤄지지 않기 때문이다.

24일 공정거래위원회와 업계 등에 따르면 상조업체에 대한 관리 부실은 일차적으로 제도의 허술함에 있다.

우리나라 첫 번째 상조업체는 1982년 설립된 부산상조다.

이후 25년 동안 상조업을 관할하는 부처조차 정해지지 못했다.

이 기간 수많은 상조업체가 난립했고, 소비자 피해가 속출했다.

상조업은 2007년 정부로부터 정식 산업군으로 인정받았고, 2010년 상조회사를 할부거래에 관한 법률상 ‘선불식 할부거래업자’로 분류했다.

하지만 이후에도 납입금 배임·횡령과 상조업체 폐업으로 인한 소비자 피해는 끊이지 않았다.

제대로 된 관리가 시작된 것은 2013년 공정위에 할부거래과가 신설되면서부터다.

하지만 이마저도 한계가 있었다.

공정위 업무는 사실상 사후규제 성격으로, 소비자 피해를 예방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사실 상조업은 보험업의 성격이 짙다.

상조업체는 회원을 모집한 뒤 매월 일정액의 회비를 받고, 대상자가 사망하면 장례에 필요한 물품과 인력을 제공한다.

매월 보험료를 내고 추후 필요한 금액 등을 제공받는 보험과 유사한 부분이다.

이 때문에 상조업을 둘러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관할부처를 금융위원회나 보건복지부 등으로 이관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하지만 금융위나 복지부 입장은 다르다.

2013년 총리실 주재로 상조업의 주관부처를 결정할 때도 두 부처는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금융위는 상조업을 금융·보험상품으로 보기 어렵다며 반대했고, 복지부는 상조업체에 대한 관리·감독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결국 당시 ‘힘없는 부서’였던 공정위가 떠맡게 됐다는 게 정설이다.

상조업이 허가업이 아닌 등록업인 것도 문제다.

일정 기준(자본금 15억원)만 맞다면 누구나 상조업을 할 수 있다는 뜻이다.

우리나라 상조업의 모태가 된 일본의 경우 상조업이 허가업으로 돼 있다.

홍정석 공정위 할부거래과장은 “일본의 경우 상조업을 관리하는 부처가 따로 있지만 우리나라는 등록업이기 때문에 소비자 보호기관인 공정위가 담당하는 시스템”이라며 “자본금 기준을 강화하고 소비자 피해를 구제하기 위한 조치를 하고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허가업으로 바꿔 진입 기준을 높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세종=박영준·안용성 기자 yjp@segye.com